[책마을] 제국의 정치·문화가 지금의 세계를 형성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민족국가들의 세계, 200여 주권국가로 이뤄진 세계는 불과 60여년 전에야 출현했다. ‘반만년 단일 민족의 역사’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으나 시공간을 전 지구적으로 넓히면 미국 뉴욕대 역사학과 교수인 제인 버뱅크와 프레더릭 쿠퍼가 말하는 대로 “대다수 사람은 역사를 통틀어 단일한 민족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국가 단위에서 살아왔다.”

이들은 함께 쓴 세계제국사에서 “국가와 민족을 합치시키는 것은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완결된 현상도 아니고 어디서나 원하는 현상도 아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학계나 현실정치에서 논쟁이 분분한 ‘제국(帝國)의 현재성’에 주목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을 제국으로 접근하고, 과거의 일로 치부되는 제국의 구조와 개념, 행태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바라보는 시각이다.

저자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제국의 역사를 발흥과 쇠퇴보다 운영에 초점을 맞춰 탐구한다. 제국은 “정복하고 통합한 사람들의 다양성을 자각적으로 유지하는 정치체”다. 민족국가와 달리 제국은 다양성, 즉 차이를 체제의 정상적인 현실로 전제하며 정치의 도구로 활용한다.

저자들은 “제국의 정치, 관행, 문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형성해 왔다”며 제국이 사람들을 통합하고 구별한 다양한 방식, 불평등하게 통치했을 때와 평등하고 동질한 집단으로 만들려고 시도했을 때의 결과를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민족국가가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는 생각”에 도전하며 “미래의 세계가 지금처럼 민족국가의 세계로 남을지, 제국의 세계로 되돌아갈지, 제국적 구조가 중첩되는 세계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말한다. 저자들이 방대한 지식으로 세계사를 개관한 뒤 던지는 미래의 과제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욕구인 정치적 소속, 기회의 평등, 상호 존중을 인정하는 새로운 정치체를 상상하는 것”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