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
올해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순국 80주기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주장한 《조선상고사》를 쓴 사학자이자 언론인이었으며, 각종 단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였다.

신채호는 188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배웠다.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됐지만 그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에 나가겠다는 뜻을 버리고 신문에 논설과 역사논문 등을 발표했다. 1907년 항일단체 신민회에 가입한 뒤 국채보상운동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에 나섰다가 191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중국에서도 비밀결사단체인 대한독립청년단을 창단하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작업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일제의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평생 무국적자로 지냈다.

1925년부터 무정부주의로 기울어 1927년 무정부주의동방동맹에 가입했다. 이듬해 자금 조달차 대만으로 향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뤼순감옥에 수감된 그는 1936년 2월21일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고, 2009년 한국 국적이 회복됐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