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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이렇다. 좋은 법관과 나쁜 법관이 있고, 좋은 변호사와 나쁜 변호사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법관이 나쁜 변호사를 나무라기도 하고, 나쁜 법관이 좋은 변호사를 나무라기도 하며, 그 역도 진(眞)이다. 물론 다른 조합도 가능하다. 요컨대 진실은 다면적이다.
문제가 더욱 복잡한 것은 좋은 법관도 나쁜 때가 있고, 나쁜 법관도 좋은 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변호사도 다르지 않다. 나는 어떤 전직 법관이 자신의 경험을 쓴 글을 읽고 나서 뒷맛이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글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가 그런 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는 현장에 있었던 매우 불행한 경험이 있다. 평가 이야기만 나오면 좋은 법관으로 자주 등장하는 어느 법관이 법정에서 증인을 신문하면서 보기에 심히 딱한 잘못을 저지르는 걸 보고 혀를 찼던 일도 있다. 정말 좋은 법관은 이길 사건은 이기게 하고, 질 사건은 지게 하는 법관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남의 사건이라서 나는 그저 구경만 하고 있는데도 뼈가 시릴 정도로 어느 법관이 변호사를 나무라고 있었다. 하지만 지청구를 듣는 변호사마저 감사해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던 까닭은, 소문에 듣던 대로 그 법관이 그 순간 아무 사심 없이 어렵고 힘없는 당사자를 챙겨주고 있어서였다. 그 법관이 높고도 높은 지위에 오르던 날,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아마 이렇게 말해야 공정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대개 맞는 수가 많을 게다. 하지만 잘 모르고 하는 말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지금의 법관 평가는 좀 전에 말한 그 다면성을 포괄하기에 부족하다. 그러니 남의 말에 너무 흔들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남의 평가 따위엔 무심한 척하거나 달통한 체하는 것도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평가라는 것에 너무 주눅 들지 말고 반대로 평가를 우습게 여기지도 말고, 그저 사심 없이 재판해 주면 되지 않을까. 사건을 사건이 생긴 대로 보면서 남의 말도 들어줄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진 법관, 내가 재판을 받고 싶은 법관은 그런 법관이다.
정인진 <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