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가 재판을 받고 싶은 법관
법관을 변호사가 평가하는 일은 역사가 오래지만 요즘엔 좀 새로워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듯하면서도 어딘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는 변호사회의 ‘법관 평가’라는 것이 매년 신문에까지 보도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렇다. 좋은 법관과 나쁜 법관이 있고, 좋은 변호사와 나쁜 변호사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법관이 나쁜 변호사를 나무라기도 하고, 나쁜 법관이 좋은 변호사를 나무라기도 하며, 그 역도 진(眞)이다. 물론 다른 조합도 가능하다. 요컨대 진실은 다면적이다.

문제가 더욱 복잡한 것은 좋은 법관도 나쁜 때가 있고, 나쁜 법관도 좋은 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변호사도 다르지 않다. 나는 어떤 전직 법관이 자신의 경험을 쓴 글을 읽고 나서 뒷맛이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글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가 그런 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는 현장에 있었던 매우 불행한 경험이 있다. 평가 이야기만 나오면 좋은 법관으로 자주 등장하는 어느 법관이 법정에서 증인을 신문하면서 보기에 심히 딱한 잘못을 저지르는 걸 보고 혀를 찼던 일도 있다. 정말 좋은 법관은 이길 사건은 이기게 하고, 질 사건은 지게 하는 법관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남의 사건이라서 나는 그저 구경만 하고 있는데도 뼈가 시릴 정도로 어느 법관이 변호사를 나무라고 있었다. 하지만 지청구를 듣는 변호사마저 감사해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던 까닭은, 소문에 듣던 대로 그 법관이 그 순간 아무 사심 없이 어렵고 힘없는 당사자를 챙겨주고 있어서였다. 그 법관이 높고도 높은 지위에 오르던 날,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아마 이렇게 말해야 공정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대개 맞는 수가 많을 게다. 하지만 잘 모르고 하는 말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지금의 법관 평가는 좀 전에 말한 그 다면성을 포괄하기에 부족하다. 그러니 남의 말에 너무 흔들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남의 평가 따위엔 무심한 척하거나 달통한 체하는 것도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평가라는 것에 너무 주눅 들지 말고 반대로 평가를 우습게 여기지도 말고, 그저 사심 없이 재판해 주면 되지 않을까. 사건을 사건이 생긴 대로 보면서 남의 말도 들어줄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진 법관, 내가 재판을 받고 싶은 법관은 그런 법관이다.

정인진 <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