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저성장시대, 소상공업 정으로 되살리자
“그녀를 처음 보고 손을 잡는 순간 느낌이 왔어요. 그건 바로 마법이었죠.”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명대사다. 이 도시에는 낭만적 사랑 외에도 잠을 못 이룰 만큼의 많은 볼거리와 관광명소가 즐비하다.

그중 하나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이다. 방금 잡아 올린 신선한 생선과 농부들이 직접 재배해 판매하는 과일과 채소, 향기를 듬뿍 머금은 꽃, 각종 미술품과 수제 공예품 등이 가득하다. 피시 마켓은 ‘날아다니는 물고기’로 유명하다. 팔뚝만 한 참치가 점원의 손에서 손으로 공중을 훨훨 날아다닌다. 45달러로 푸드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주요 상점을 돌며 전통 먹거리를 두루 맛볼 수 있다.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는 스타벅스 1호점이다. 원조 맛을 보기 위해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게 밖까지 줄을 선다.

해외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에게 그 지역의 맛집이나 전통시장은 꼭 들러봐야 할 코스다. 현지인들의 생생한 삶과 문화의 숨결이 담겨 있어 지역 특유의 색과 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장이나 골목상권은 어떤가. 불편하고 낙후된 장터에서 최근 시설확충과 재개발 등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외관과 내부를 깨끗하게 고치는 것만으로 시장 활성화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능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인간중심, 주변과의 조화, 힐링 등을 중시하는 패러다임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 여기에다 금융·물류·교통 등의 인프라 구축으로 사람을 모여들게 하는 베니스 모델이나, 콘텐츠를 중심으로 시장과 문화·예술이 상호 교접하는 피렌체 모델을 내장한다면 금상첨화의 전략이 될 것이다.

당장에 시급한 점은 입지에 따른 저마다의 독특한 색깔과 개성을 살리려는 노력일 것이다. 차별화된 모습을 구축하기 위해선 그 장소의 핵심가치부터 추출해야 한다. 잠재된 지역매력을 끌어내 이를 경쟁력으로 삼는 등 장소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전통시장이나 거리 등을 랜드마크로 꾸미기도 한다. 일본 아오모리 쇼핑몰의 외관은 현대식이지만 내부는 1970~1980년대 시장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 결과 그곳 시민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관광명소가 됐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엔 마음을 담아 고객의 신뢰를 되먹임하는 노력 등 지속가능한 생존전략을 찾아야 한다. 핵심 키워드는 얼굴표정 하나만으로도 친근감이 오가는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의 부흥이다. 휴먼 스케일은 우리 몸에 적당한 편안함과 포근함을 안겨주는 공간을 뜻한다. 정서적 동조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골목상권이나 시장의 경우 독특한 정서적 요소로 덤 서비스와 가격흥정 및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 등을 들 수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엔 이런 맛이 없다. 이름표가 새겨진 채소와 과일이 투명비닐 속에 갇혀있어 덤은 생각도 못한다. 손해를 본다는 엄살을 부리고 서로 깍쟁이라고 되뇌면서 동네 시장은 흥정으로 출렁거리고 시끌벅적하다. 지속가능의 생존전략은 이처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취를 되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소상공인들은 전국적으로 자영업자와 전통시장 상인 등 그 수가 600여만명을 헤아린다. 부양가족까지 합하면 전체 국민의 40%, 2000만명의 생계가 달려 있는 서민경제의 근간이다.

오는 22~28일은 올해 처음으로 지정된 소상공인 주간이며 26일은 제1회 ‘소상공인 날’로 다채로운 이벤트가 전국 1만여 가게에서 펼쳐진다. 365일 24시간 환한 불을 밝히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염원하는 ‘우리 동네 소상공인들’의 축제에 뜨거운 관심을 기대한다.

이일규 <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