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학구조개혁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요즘 대학가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구조개혁을 어떻게 추진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말의 대학 구조개혁평가 결과에 따라 저마다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정작 대학구조개혁법안은 1년10개월째 국회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정원 줄이기에 동참해왔다. 특수성이 인정된 일부 대학을 제외한 전국 298개 대학이 교육 여건을 어떻게 개선했고, 교육의 질은 어떻게 끌어올렸는지에 대해 평가를 받았다. 그 평가 결과 대학별로 정해진 정원 감축 비율에 따라 정원을 감축한 대학도 있고, 구조개혁 평가에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정원을 줄인 대학도 적지 않다.

대학의 이런 정원 감축 노력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대학구조개혁법이 제정돼야 한다. 지금처럼 구조조정의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라면 대학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가능한 한 정원을 줄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평가 결과에 따른 감축은 권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학구조개혁법이 없으면 시장 원리에 따라 대학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대학별 정원이 조정될 것이다. 이럴 경우 수도권 4년제 대학으로 학생이 집중돼 지방대나 전문대는 학생을 모집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교수와 교직원은 교육과 연구가 아닌 학생 유치에만 매달리게 된다. 교육에 재투자할 여력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고 그로 인한 교육의 질 저하, 폐교 위기는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최근 3년간의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통계는 신입생 미충원의 90%가 지방대이며, 이 중 43%가 전문대란 사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일본은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1992년 205만명→2012년 110만명), 대학 수는 오히려 늘어나는(523개→783개) 기현상으로 인해 적자 대학이 30%, 파산 우려 대학도 11%에 이르는 등 부실이 심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대학은 얼마나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했는가’를 조사한 결과 일본은 조사 대상 60개국 중 41위에 그쳤다. 캠퍼스를 대도시로 이전하거나 노천온천탕을 만들고 등록금을 낮추는 등 생존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지방대는 한국의 국토 균형 발전에 양질의 인력을 공급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고, 전문대는 산업 발전에 필요한 고급 기능인력을 양성하는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이런 토대가 무너진다면 국가적 숙원인 국토 균형 발전은 어떻게 되고,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산업역군은 누가 길러낸다는 말인가.

규제는 적을수록 좋지만 시장의 쏠림이 심한 경우에는 어느 정도 규제를 통해 편향을 조정해 주는 게 맞다. 대학이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안정된 여건, 안정된 학생 모집이 절실하다.

현재로서는 대학구조개혁법 제정이 그런 여건을 마련해주는 유일한 길이다. 국회는 더 이상 당리당략에 의한 정쟁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 사회 교육현장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해 올바른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는 이른 시일 안에 대학구조개혁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김영식 < 금오공과대총장·지역중심 국·공립대 총장협의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