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홍콩 누아르영화의 대표격인 ‘영웅본색’이 지난 17일 개봉 30주년을 맞아 다시 개봉했다. 개봉 22년째를 맞은 ‘쇼생크 탈출’은 24일 다시 스크린에 걸린다. 과거 팬들을 사로잡았던 명작들이 연초부터 봇물 터지듯 재개봉하고 있다. 미디어 종류와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검증된 콘텐츠의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재개봉 영화는 인지도를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어설픈 최신작보다 낫다. 특히 20~30대 젊은 층 사이에 그간 보지 못한 명작을 챙겨보려는 문화가 번지고 있는 점도 재개봉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인터넷TV(IPTV)와 케이블TV, 인터넷 포털 등에서 주문형 비디오(VOD)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재개봉해 관객 31만5000여명을 동원한 할리우드 멜로영화 ‘이터널 선샤인’.
지난해 11월 재개봉해 관객 31만5000여명을 동원한 할리우드 멜로영화 ‘이터널 선샤인’.
◆지난해 재개봉영화 관객 7배 ‘껑충’

CJ CGV가 재개봉한 영화 가운데 흥행 상위 10편의 관객은 2014년 약 9만8000명에서 지난해 71만4000명가량으로 7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재개봉한 할리우드 멜로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약 31만5000명을 모았다. 최초 개봉 관객(2005년 당시 17만명)을 뛰어넘었다. 흥행을 주도한 건 20대 여성 관객이다. CJ CGV에 따르면 여성 예매 비율이 약 70%에 달했고, 20대 여성이 전체 예매 고객의 51%를 차지했다.

'영웅본색' '쇼생크 탈출'…옛 인기 영화 재개봉 열풍
영화 수입업계 관계자는 “재개봉작 수입가격이 대부분 5만달러(약 6000만원) 이하인 점을 고려하면 이터널 선샤인은 극장에서만 10억원 안팎의 순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여기에 케이블방송, IPTV, 인터넷 포털 등의 VOD에서 2억~3억원 정도 추가 수익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개봉작은 손익분기점이 1만명 안팎에 불과하다. 수입가격이 낮은 데다 높은 인지도에 힘입어 홍보 마케팅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재개봉 열풍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달 재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약 한 달간 9만8000여명을 모아 흥행에 성공했다.

‘인생은 아름다워’ ‘무간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브로크백마운틴’ ‘오페라의 유령’ 등도 다음달 줄줄이 재개봉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 ‘굿윌헌팅’ ‘벤허’ ‘히트’ ‘파이트클럽’ 등도 연내 재개봉할 것이란 전망이다.

◆검증된 영화 수요 늘어

CGV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재개봉 영화는 주로 비수기에 개봉한다. 대작이 없을 경우 관객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개봉작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췄다. 마니아층을 뛰어넘는 대중적 인지도를 지녔다는 얘기다.

주관객층은 대도시에 사는 20~30대 여성과 30~40대 남성이다. 30~40대 남성들은 명작을 통해 향수를 음미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 팬을 자처하는 20~30대 여성들은 흘러간 명작을 꼭 봐야 할 목록에 넣어뒀다.

기술 발전도 한몫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원작을 더 선명한 화질과 웅장한 사운드로 재탄생시킨 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선보인다. 그 덕분에 명작 재개봉이 하나의 틈새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흥행에 성공한 재개봉작은 TV에서 비교적 노출이 덜 된 게 많다. DVD 소장용이나 어렵게 내려받을 수 있던 작품을 상영할 경우 호응도가 더 높다는 분석이다. CGV 관계자는 “2013년 처음 재개봉 영화시장이 열린 뒤 1년 정도 잠잠하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붐이 일었다”며 “재개봉작의 열기는 오래 지속되는 게 아니라 유행을 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재혁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