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공화당의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 유력주자가 각각 2~3명 선으로 압축되면서 이들이 내세운 공약의 대차대조표를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미국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허황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공약은 철저하게 검증해 걸러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유력주자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와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의 감세 공약이 예산 전문가들 사이에서 실현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샌더스 18조달러·트럼프 12조달러…'포퓰리즘 공약 대결장' 된 미국 대선
◆재정적자 언급 없이 감세 주장만

비영리 연구단체인 세금정책연구소(TPC)와 택스파운데이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등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가 공약에서 밝힌 세금감면 규모는 향후 10년간 총 9조5000억~12조달러(1경1780조~1경4880조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에 달하는 규모로, 역대 대통령의 재임 중 감세 기록(GDP 대비 1.4~2.1%)을 압도한다.

트럼프는 연소득 5만달러 이하 가구에 세금을 면제해주고, 법인세 최고세율을 38%에서 15%로 내리는 등의 ‘화끈한’ 감세안을 제시했다. 트럼프는 “감세를 통해 기업 투자를 늘리고, 해외 이전 기업을 되돌아오게 해 세입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루비오 의원은 단일 법인세율(25%)을 도입하고, 자본이득과 신규투자 배당금에 대한 면세 등을 내용으로 하는 6조달러대의 감세안을, 크루즈 의원도 10% 단일 세율의 소득세제와 법인세 폐지 후 부가세 신설(16%)을 중점으로 하는 3조7000억~8조6000억달러 규모의 감세안을 내놨다.

NYT는 “대선주자들은 감세로 투자가 일어나고 이를 통해 세입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저성장 국면과 노동력 감소 상황 속에서 이 같은 주장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감세는 그대로 재정적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샌더스 공약 지키려면 마법 필요”

민주당에서는 소득불평등 해소를 주장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향후 10년간 총 18조달러(약 2경2320조원) 규모에 달하는 ‘통 큰’ 선심성 공약을 내걸었다.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을 포함해 △사회보장제(한국의 국민연금) 확대 △공립대 등록금 면제 △유급출산휴가·유급병가제 도입 △사회 인프라 1조달러 투자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는 국방비 지출을 줄이고 부자 증세, 대기업 감세 중단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샌더스의 공약은 투자를 위축시키고 성장률을 떨어뜨려 지출은 지출대로 늘어나고 세입은 늘리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샌더스가 대통령이 된 뒤 약속을 지키려면 ‘마법(magic)’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공약이 재정적으로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공립대 등록금 지원, 건강보험 확대 등의 공약을 시행하기 위해 △버핏세(연 100만달러 이상 소득자에게 최소 30% 세율 부과) △연 500만달러 이상 고소득자에게 4% 추가 세금 부과 △일자리·이윤 해외 반출 기업에 ‘탈출세’ 부과 등의 세입 확대 방안을 제시했다.

WSJ는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감세 및 지출 확대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결국 부채 부담 때문에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공공부채를 추산하는 미부채시계(www.usdebtclock.org)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미국 부채 총액은 19조달러(약 2경3560조원)로 미 국민 1인당 5만8900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부채 규모는 새로운 지출 항목 없이도 10년 뒤 29조3000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