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뉴욕 뉴욕 뉴욕
나와 한복의 인연은 태중에서부터 시작됐다. 집안 어른들 한복을 직접 지으셨던 어머니는 나를 임신했을 때도 손을 쉬지 않았다. 어머니의 솜씨를 태교로 전해 받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게 생명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평생의 업을 함께 주신 셈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8년째 활동하고 있던 2000년, 파리 부티크엔 미국 뉴욕의 바이어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그중엔 고급 백화점 버그도프굿맨의 회장과 부회장을 비롯한 뉴욕의 유명인사가 꽤 있었다.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보라”는 권유와 제안도 많이 들어왔다. 나 역시 뉴욕에 진출하고 싶었다.

나는 뉴욕에 한복 박물관을 열기 위해 2003년 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비영리 사단법인 ‘미래(美來)문화’를 만들었다. “‘아름다움이 오는 날’을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였다. 사단법인이 있어야 소장품을 미국으로 내어갈 수 있었고, 돈을 기부받을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2004년 9월24일, 뉴욕 맨해튼 32가 번화가에 ‘이영희 한국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박물관이 한국과 세계, 나아가 동서양 문화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리라 믿었다. 박물관 내 모든 예술품은 내 것이 아니라 세계인의 것이라 생각했다. 옷 하나만을 봐도 한국 문화의 힘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복과 박물관이 인연이 돼 오랫동안 동경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도 했다. 언젠가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을 위해 한국 동포들이 후원의 밤을 열게 됐는데, 힐러리 측에서 “행사 장소가 꼭 ‘이영희 한국박물관’이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국의 전통을 너무나 사랑하며, 전통이 함께 하는 공간에서 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 행사 전 그에게 한복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이렇게 아름다운 옷은 처음 본다”며 기뻐했던 그와 나는 친구가 됐다.

올해로 한복과 함께 한 지 어언 40년이 됐다. 그 세월은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인을 위한 새로운 의상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이렇게 벌여놓은 일들이 우리 문화에 조금이나마 영향이 있을 것을 생각하면 기운이 솟는다.

세계인들이 한복을 입고 맨해튼을 당당히 누빌 때가 오길 기다리는 마음은 비단 나만의 욕심은 아니라 여긴다. 오래도록 변함없는 저 태양도 날마다 새롭듯이, 내 손끝에서 재창조된 한복은 새로운 모습과 감동으로 세계인을 맞이할 것이다.

이영희 < 메종 드 이영희 대표 leeyounghee@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