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게 된 정영식 씨(56)는 은퇴한 뒤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거주하고 있는 서울 여의도 9억원대 아파트를 팔고 부산에 5억원대 아파트를 장만한 뒤 주택연금을 신청하기로 아내와 의견을 모았다. 60세부터 주택연금으로 매달 113만원을 받으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더해 월 3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생겨 노후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처럼 아파트를 상속하지 않고 노후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장년층이 꾸준히 늘고 있다. 주택연금은 60세 이상 부부가 시가 9억원 이하의 주택을 담보로 맡기면 한국주택금융공사 보증에 따라 은행에서 생활자금을 매달 지급하는 제도다. 이용자가 사망하면 담보주택 매각 등의 방법으로 그동안의 생활비 지급액을 한번에 상환하게 되며 돈이 남으면 상속인에게 상속된다.

정부도 주택연금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부채 감소와 노후 보장 그리고 저소득층 생계 보장 확대 등을 골자로 ‘내집연금 3종 세트’를 추가 도입하는 등 주택연금 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은행과 보험회사 프라이빗뱅커(PB)들은 “거주 문제와 노후 생활비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바로 주택연금”이라고 설명했다.
[노후 준비, 시작이 절반] "집은 대물림 수단 아닌 노후자산"…60대 이상, 주택연금 가입 확산
◆장년층 관심 커진 주택연금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층 가구가 보유한 자산의 약 80%는 부동산이다. 고령층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6.6%로 낮은 수준이지만, 소득과 비교한 부채 비율은 93.9%에 이른다. 집을 팔면 거주할 곳이 없고 집을 안 팔면 생활비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주택연금은 장년층의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노후에 주택을 담보로 생활비를 조달하고 사망한 뒤 집을 팔아 갚는 식이다. 이 같은 장점이 알려지면서 주택연금 가입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2007년 도입해 가입자 수가 3만407명(지난 19일 기준)에 달했다.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72세이며, 평균 2억8000만원의 주택을 담보로 월 99만원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무악동의 6억원대 아파트에 사는 권영선 씨(60)도 최근 은행 상담을 거쳐 주택연금을 신청하기로 했다. 권씨는 만기가 10년 남은 일시상환 방식(연 3.04% 금리)의 주택담보대출 1억9000만원을 빌린 상태다. 매달 48만원을 이자로 내고 있지만, 주택연금을 신청해 주택담보대출을 갚고 연금을 받으면 매달 이자 부담 대신 약 80만원을 생활비로 조달할 수 있다. 재산세와 소득세도 절감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가격 하락이 예상되면 주택연금은 더 큰 인기를 끌 것으로 보고 있다. 주택연금은 주택의 현재가를 기준으로 연금액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윤치선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구위원은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그 차액만큼 이익이 생기고, 주택 가격이 오르면 집을 처분해 지금까지 받은 돈을 갚고 주택연금을 해약할 수 있다”며 “주택가격 변동성으로부터 주택연금 가입자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새로 나오는 ‘내집연금 3종 세트’

노후를 보낼 내 집을 마련하려던 중소기업 부장 장모씨(50)는 정부가 올해 도입하기로 한 주택담보대출 3종 세트를 활용하기로 했다. 싸게 빌려서 집을 사고, 노후엔 생활비를 받는 ‘보금자리론 연계 주택연금’ 상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장씨는 최근 은행 PB센터 상담을 통해 10년 원리금 분할 방식으로 1억5000만원을 대출받은 뒤 주택연금과 연계해 서울 외곽에 3억원대 주택을 사기로 결정했다. 연 2.4% 금리를 가정하면 매달 112만원을 갚고, 60세가 되는 시점에 주택연금으로 전환해 매달 43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