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삼성 반도체 과외교사' 일본 샤프, 독자기술만 고집하다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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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 대만 훙하이의 7조2800억원 인수 제안 수용
한때는 삼성에 기술 전수
삼성, 1983년 반도체 진출 때 훈련생 보내 곁눈질로 배워
삼성전자 겨누는 훙하이
중소형 LCD·SDP 통합…스마트폰·TV패널 양산
최종 계약까진 시간 걸릴 듯
훙하이 "우발채무 검토 위해 정식 계약 체결은 잠시 보류"
한때는 삼성에 기술 전수
삼성, 1983년 반도체 진출 때 훈련생 보내 곁눈질로 배워
삼성전자 겨누는 훙하이
중소형 LCD·SDP 통합…스마트폰·TV패널 양산
최종 계약까진 시간 걸릴 듯
훙하이 "우발채무 검토 위해 정식 계약 체결은 잠시 보류"
‘삼성전자의 반도체 과외교사’였던 일본 샤프가 대만 훙하이그룹에 팔리게 됐다. ‘샤프 펜슬’을 발명하기도 한 샤프는 1912년 설립돼 업력만 100년이 넘었다. 한때 일본 전자산업을 이끌던 대형 업체가 외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처음이다. 샤프에서 어깨너머로 반도체 기술을 배워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이 된 삼성전자로선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채 과거 영화인 중소형 LCD(액정표시장치)에 집착한 것이 결국 매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샤프는 ‘삼성의 과외교사’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은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을 담은 ‘도쿄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진 일본 전자업체에 기술 전수를 요청했다. 당시 세계 반도체 업계 선두를 다투던 히타치제작소와 도시바, NEC 등은 삼성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아기호랑이’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본 전자업체 중 유일하게 삼성의 손을 잡아준 것이 샤프였다. 샤프는 삼성 직원들을 기술훈련생으로 받아줬다. 삼성 반도체의 초석을 쌓은 김광호 반도체사업본부장(전 부회장)과 이윤우 반도체개발실장(현 비상근고문) 등은 1983년 2월 말 직원들과 함께 일본 샤프를 방문했다. 이 회장은 “기술을 완전히 전수받을 때까지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샤프는 기술이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알아서 배워가라는 식이었다. 공장에서 메모도 하지 못하게 했다. 훈련생 신분인 삼성 직원들은 곁눈질로 기술을 배워야 했다. 서로 다른 기술을 배워 나중에 결합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배운 기술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가 탄생했다. 샤프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과외교사로 불리는 이유다.
삼성은 이런 인연을 소중히 했다. 2013년 샤프가 LCD 공급 과잉으로 위기에 몰리자 삼성은 104억엔을 출자해 3.05%의 지분을 취득했다. 샤프 자회사였던 사카이디스플레이(SDP)와 대형 LCD 장기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중소형 LCD 독자노선이 부른 화(禍)
샤프는 25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훙하이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훙하이가 제시한 금액은 출자를 포함해 총 6600억엔(약 7조2800억원)에 이른다. 훙하이는 샤프 지분 66%를 확보하게 된다. 훙하이는 샤프와 공동운영 중인 대형 LCD 패널 생산업체인 SDP 자산도 인수한다.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샤프가 결국 매각되고 만 것은 중소형 LCD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으로 업계는 분석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 전자업체는 구조조정을 요구받았다. 히타치 도시바 소니 등은 2012년 4월 일본 정부 주도의 산업혁신기구에 LCD사업을 넘기면서 ‘선택과 집중’에 나섰다. 그 당시 출범한 것이 일본 ‘중소형 LCD 연합군’인 재팬디스플레이다. 이들 회사는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탄생했다. 하지만 샤프는 끝까지 독자노선을 고집했다. 1973년 LCD를 이용한 계산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액정의 샤프’로 불린 자존심이 액정 사업을 접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삼성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실적은 좀처럼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샤프는 2011회계연도 이후 4년간 총 1조1000억엔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3회계연도 115억엔 순이익을 냈지만 또다시 적자 수렁에 빠졌다. 2014회계연도 실적 발표 후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감자와 증자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으나 운명을 돌려놓진 못했다.
삼성전자에 도전장 내민 훙하이
훙하이가 샤프를 인수한 뒤에는 중소형 LCD사업과 SDP를 통합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궈타이밍 회장은 스마트폰과 TV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양산에 투자해 이 분야에서 앞서 있는 삼성전자 등 한국 업체를 따라 잡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보도했다. 궈타이밍 회장은 샤프의 태양전지 사업을 제외한 주력 사업을 통합해 운영할 생각도 갖고 있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훙하이의 샤프 인수에 대해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향후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해외 TV 공장은 샤프가 이미 중국 하이센스 등에 매각해 훙하이가 샤프 브랜드로 TV 사업에 직접 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OLED 신규 투자를 통해 애플의 패널 공급자로 선정될 경우 현재 아이폰과 아이패드 핵심 공급자인 LG디스플레이나 삼성디스플레이는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한편 훙하이는 샤프와의 인수계약 체결을 잠시 보류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훙하이가 샤프로부터 3500억엔(약 3조8750억원) 규모의 우발채무 목록을 전달받고 검토 중”이라며 “인수를 단념한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은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을 담은 ‘도쿄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진 일본 전자업체에 기술 전수를 요청했다. 당시 세계 반도체 업계 선두를 다투던 히타치제작소와 도시바, NEC 등은 삼성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아기호랑이’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본 전자업체 중 유일하게 삼성의 손을 잡아준 것이 샤프였다. 샤프는 삼성 직원들을 기술훈련생으로 받아줬다. 삼성 반도체의 초석을 쌓은 김광호 반도체사업본부장(전 부회장)과 이윤우 반도체개발실장(현 비상근고문) 등은 1983년 2월 말 직원들과 함께 일본 샤프를 방문했다. 이 회장은 “기술을 완전히 전수받을 때까지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샤프는 기술이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알아서 배워가라는 식이었다. 공장에서 메모도 하지 못하게 했다. 훈련생 신분인 삼성 직원들은 곁눈질로 기술을 배워야 했다. 서로 다른 기술을 배워 나중에 결합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배운 기술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가 탄생했다. 샤프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과외교사로 불리는 이유다.
삼성은 이런 인연을 소중히 했다. 2013년 샤프가 LCD 공급 과잉으로 위기에 몰리자 삼성은 104억엔을 출자해 3.05%의 지분을 취득했다. 샤프 자회사였던 사카이디스플레이(SDP)와 대형 LCD 장기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중소형 LCD 독자노선이 부른 화(禍)
샤프는 25일 열린 임시이사회에서 훙하이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훙하이가 제시한 금액은 출자를 포함해 총 6600억엔(약 7조2800억원)에 이른다. 훙하이는 샤프 지분 66%를 확보하게 된다. 훙하이는 샤프와 공동운영 중인 대형 LCD 패널 생산업체인 SDP 자산도 인수한다.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샤프가 결국 매각되고 만 것은 중소형 LCD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으로 업계는 분석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 전자업체는 구조조정을 요구받았다. 히타치 도시바 소니 등은 2012년 4월 일본 정부 주도의 산업혁신기구에 LCD사업을 넘기면서 ‘선택과 집중’에 나섰다. 그 당시 출범한 것이 일본 ‘중소형 LCD 연합군’인 재팬디스플레이다. 이들 회사는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탄생했다. 하지만 샤프는 끝까지 독자노선을 고집했다. 1973년 LCD를 이용한 계산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액정의 샤프’로 불린 자존심이 액정 사업을 접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삼성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실적은 좀처럼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샤프는 2011회계연도 이후 4년간 총 1조1000억엔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3회계연도 115억엔 순이익을 냈지만 또다시 적자 수렁에 빠졌다. 2014회계연도 실적 발표 후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감자와 증자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으나 운명을 돌려놓진 못했다.
삼성전자에 도전장 내민 훙하이
훙하이가 샤프를 인수한 뒤에는 중소형 LCD사업과 SDP를 통합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궈타이밍 회장은 스마트폰과 TV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양산에 투자해 이 분야에서 앞서 있는 삼성전자 등 한국 업체를 따라 잡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보도했다. 궈타이밍 회장은 샤프의 태양전지 사업을 제외한 주력 사업을 통합해 운영할 생각도 갖고 있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훙하이의 샤프 인수에 대해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향후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해외 TV 공장은 샤프가 이미 중국 하이센스 등에 매각해 훙하이가 샤프 브랜드로 TV 사업에 직접 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OLED 신규 투자를 통해 애플의 패널 공급자로 선정될 경우 현재 아이폰과 아이패드 핵심 공급자인 LG디스플레이나 삼성디스플레이는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한편 훙하이는 샤프와의 인수계약 체결을 잠시 보류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훙하이가 샤프로부터 3500억엔(약 3조8750억원) 규모의 우발채무 목록을 전달받고 검토 중”이라며 “인수를 단념한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