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미디어 뉴스룸-캠퍼스 잡앤조이] "흙수저에서 보석명장으로…시간이 흘러도 보석의 가치는 변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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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목 대한민국 보석 명장
김종목 대한민국 귀금속세공명장(사진)은 대한민국 보석산업의 산증인이다. 17세 때 강원도 양양에서 상경해 명동에 있는 보석상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보석세공 한 우물만 파왔다. 김 명장은 변변한 기술도 없고 ‘가방끈’(학력)마저 짧아 취업을 고민하던 중 누나의 권유로 명동에 있는 보석상에서 일하게 됐다.
김 명장은 “남보다 2~3시간 일찍 가게에 나와 청소했고, 저녁 늦게까지 보석을 세공하고 디자인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가게에서 보냈다”며 “나중에는 사장이 가게 열쇠를 맡길 만큼 신뢰를 쌓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명동에서 창업하면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만한 나이인 25세에 창업한 그는 명장부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1988년 은메달, 1990년 금메달을 따 ‘대한민국 명장 1세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요즘 말하는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일찌감치 명장이 됐고, 이후 대한민국 주얼리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정세가 불안할 때 주식, 부동산, 환율 등 모든 투자대상이 하락하지만 국제적 화폐기능을 하는 귀금속 가치는 오히려 상승한다”며 “귀금속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비돼 없어지는 고급 자동차와 같은 사치품이 아니며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그 가치가 오르는 투자상품으로 귀금속산업 선진국인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 보석업자가 상위 10% 부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김 명장은 “지난해 국회와 정부가 주얼리에 적용된 일부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했다”며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까르띠에 못지않은 명품 보석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석 중 최고의 보석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열에도 변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희귀한 루비라고 생각하지만 보석을 다루는 마음이 보석보다 아름다워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기에 마음이 최고의 보석”이라고 강조했다.
캠퍼스잡앤조이 구독문의 (02)360-4855
정유진 캠퍼스잡앤조이 기자 jinjin@hankyung.com
김 명장은 “남보다 2~3시간 일찍 가게에 나와 청소했고, 저녁 늦게까지 보석을 세공하고 디자인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가게에서 보냈다”며 “나중에는 사장이 가게 열쇠를 맡길 만큼 신뢰를 쌓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명동에서 창업하면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만한 나이인 25세에 창업한 그는 명장부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1988년 은메달, 1990년 금메달을 따 ‘대한민국 명장 1세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요즘 말하는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일찌감치 명장이 됐고, 이후 대한민국 주얼리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정세가 불안할 때 주식, 부동산, 환율 등 모든 투자대상이 하락하지만 국제적 화폐기능을 하는 귀금속 가치는 오히려 상승한다”며 “귀금속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비돼 없어지는 고급 자동차와 같은 사치품이 아니며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그 가치가 오르는 투자상품으로 귀금속산업 선진국인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 보석업자가 상위 10% 부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김 명장은 “지난해 국회와 정부가 주얼리에 적용된 일부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했다”며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까르띠에 못지않은 명품 보석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석 중 최고의 보석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열에도 변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희귀한 루비라고 생각하지만 보석을 다루는 마음이 보석보다 아름다워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기에 마음이 최고의 보석”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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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캠퍼스잡앤조이 기자 jin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