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 은행의 부실채권 잔액은 9조1430억엔(약 100조원)으로 1999년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10조엔 아래로 떨어졌다. 정부 주도로 산업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단행, 기업부실 등 실물경제 위험이 은행으로 번지는 사태를 차단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기업 구조조정 지연을 꼽아왔다. 이에 따라 정부가 앞장서 산업혁신기구라는 민관합동펀드를 구성, 기업별 합종연횡에 ‘마중물’ 역할을 하는 등 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업혁신기구는 약 2조엔(약 22조원)의 실탄을 조성해 구조조정의 산파역을 하고 있다.

일본 반도체 연합군인 르네사스테크놀로지를 비롯해 중소형 액정표시장치(LCD) 통합회사인 재팬디스플레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업체인 JOLED 탄생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공황 못지않은 은행 시스템의 충격을 경험한 미국도 지난해 은행 부실채권 비율을 1.59%로 끌어내렸다. 미국은 자본시장을 통한 선제적 구조조정이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달해 있다. 기업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사모펀드들이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을 사들여 정상화하는 역할을 해 기업 부실이 곪아터질 때까지 놔두지 않는다는 얘기다. 은행들이 갖고 있는 부실채권을 전문적으로 사들이는 시장도 활성화돼 있다.

2013년 미국 연방정부가 은행의 위험자산 대출을 억제하면서 대출 등 기업금융의 주요 축이 은행에서 사모펀드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도 은행 부실채권 비율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다. 예컨대 미국 1위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이 지난해 굴린 3500억달러 가운데 1500억달러가량을 기업대출 등 크레디트펀드(credit fund)를 통해 운용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