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4세 경영시대'] 평사원으로 출발한 두산가 4세 맏형…전략·기획통 '31년 두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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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회장은?
그룹내 전 직급 두루 거친 박용곤 명예회장 장남
"남의 밥 먹어봐야 한다"…일본 기린맥주서 1년 근무
연료전지·면세점 사업 등 그룹 신사업 적극 추진
그룹내 전 직급 두루 거친 박용곤 명예회장 장남
"남의 밥 먹어봐야 한다"…일본 기린맥주서 1년 근무
연료전지·면세점 사업 등 그룹 신사업 적극 추진
두산그룹의 새 회장을 맡게 된 박정원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54)은 외유내강형 경영인이자 준비된 회장으로 불린다. 박 회장은 오너 일가 가운데 최대주주로, 지주사인 (주)두산 보통주 133만7013주(6.29%)와 우선주 1만5881주(0.29%)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평사원으로 입사해 31년간 ‘두산맨’으로 일하며 숱한 현장을 경험한 경영인이기도 하다. 또 스스로를 내세우기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하고, 주변 말에 귀 기울이는 스타일이라는 게 재계 평가다.
박 회장의 탈(脫)권위주의적인 면모는 두산가(家)의 장손이라는 위치와도 무관하지 않다. 올해 창립 120년을 맞은 두산그룹의 모태는 고(故) 박승직 창업주가 1896년 서울 종로4가에 세운 ‘박승직상점’이다. 박 회장은 증조부 박 창업주-조부 고(故) 박두병 초대 회장-부친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으로 이어지는 두산가의 장손이자 두산 4세대의 맏형이다. 계열사에 흩어져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사촌동생들을 하나로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외유내강의 기질이 몸에 배었다는 얘기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 회장은 대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두산산업(현 두산글로넷BG)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2012년 지주사인 (주)두산 회장에 오르기까지 두산산업 뉴욕지사, 동양맥주 과장, 동양맥주 이사, 두산 관리본부 전무, 두산 상사BG 대표,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두산건설 부회장 등을 맡으며 다양한 사업을 경험했다. ‘밑바닥에서 업무를 익히고 남의 밥도 먹어보라’는 두산가의 전통에 따라 1992년엔 1년 넘게 일본 기린맥주에서 과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두산산업 입사 후인 1989년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상당한 영어와 일본어 실력을 갖춘 배경이다.
박 회장은 수시로 현장을 찾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 1월엔 민간투자사업으로 참여한 신분당선 연장 구간(정자~광교)을 임직원들과 함께 시승하며 사전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 을지로6가 두산타워 주변 식당가에서 직원들과 식사하는 것도 즐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본부장급 회식을 할 때 본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고, 한 사람씩 발언 기회를 준 뒤 주의 깊게 듣는다”고 말했다.
두산베어스 야구단 구단주인 박 회장은 ‘야구광’으로 유명하다.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의 잠실시리즈 경기가 있을 때면 빼놓지 않고 챙겨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엔 일본 미야자키 아이비구장에서 전지훈련 중이던 두산베어스 선수들을 직접 찾아가 격려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위기의 순간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는 1991년 오비맥주 ‘페놀 오염’ 사건이 터졌을 때를 아찔했던 순간으로 꼽는다. 오비맥주는 이후 경쟁사인 하이트맥주에 추월당했다. 1992년 동양맥주 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98년 주류부문 관리담당 상무까지 지내면서 오비맥주의 위기를 현장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엔 최악의 건설업 불황기에 두산건설을 맡았다. 당시 두산건설 부회장이던 그는 계열사 두 곳을 매각하는 등 선제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2012년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맡았을 때 그는 변신과 도전을 택했다. (주)두산은 2014년 연료전지사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정한 뒤 국내 선도 업체인 퓨얼셀파워와 건물용 연료전지업체인 미국 클리어에지파워를 전격 인수했다. 지난해 연료전지사업은 수주 5870억원, 매출 1680억원, 영업이익 55억원을 기록하며 괜찮은 출발을 알렸다. 2004년 오비맥주를 매각하며 그룹의 주력을 중공업 중심으로 바꾼 두산이 지난해 면세점 사업에 뛰어든 데도 박 회장의 뜻이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박 회장이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덕목은 부지런함과 전략적 사고다. 재계 관계자는 “120년 역사를 가진 두산은 위기의 순간마다 변화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했다”며 “박 회장이 앞으로 어떤 승부수를 던질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공군 참모총장 출신인 김인기 전 국회의원의 딸 김소영 여사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박 회장의 탈(脫)권위주의적인 면모는 두산가(家)의 장손이라는 위치와도 무관하지 않다. 올해 창립 120년을 맞은 두산그룹의 모태는 고(故) 박승직 창업주가 1896년 서울 종로4가에 세운 ‘박승직상점’이다. 박 회장은 증조부 박 창업주-조부 고(故) 박두병 초대 회장-부친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으로 이어지는 두산가의 장손이자 두산 4세대의 맏형이다. 계열사에 흩어져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사촌동생들을 하나로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외유내강의 기질이 몸에 배었다는 얘기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 회장은 대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두산산업(현 두산글로넷BG)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2012년 지주사인 (주)두산 회장에 오르기까지 두산산업 뉴욕지사, 동양맥주 과장, 동양맥주 이사, 두산 관리본부 전무, 두산 상사BG 대표,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두산건설 부회장 등을 맡으며 다양한 사업을 경험했다. ‘밑바닥에서 업무를 익히고 남의 밥도 먹어보라’는 두산가의 전통에 따라 1992년엔 1년 넘게 일본 기린맥주에서 과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두산산업 입사 후인 1989년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상당한 영어와 일본어 실력을 갖춘 배경이다.
박 회장은 수시로 현장을 찾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 1월엔 민간투자사업으로 참여한 신분당선 연장 구간(정자~광교)을 임직원들과 함께 시승하며 사전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 을지로6가 두산타워 주변 식당가에서 직원들과 식사하는 것도 즐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본부장급 회식을 할 때 본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고, 한 사람씩 발언 기회를 준 뒤 주의 깊게 듣는다”고 말했다.
두산베어스 야구단 구단주인 박 회장은 ‘야구광’으로 유명하다.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의 잠실시리즈 경기가 있을 때면 빼놓지 않고 챙겨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엔 일본 미야자키 아이비구장에서 전지훈련 중이던 두산베어스 선수들을 직접 찾아가 격려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위기의 순간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는 1991년 오비맥주 ‘페놀 오염’ 사건이 터졌을 때를 아찔했던 순간으로 꼽는다. 오비맥주는 이후 경쟁사인 하이트맥주에 추월당했다. 1992년 동양맥주 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98년 주류부문 관리담당 상무까지 지내면서 오비맥주의 위기를 현장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엔 최악의 건설업 불황기에 두산건설을 맡았다. 당시 두산건설 부회장이던 그는 계열사 두 곳을 매각하는 등 선제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위기를 정면돌파했다.
2012년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맡았을 때 그는 변신과 도전을 택했다. (주)두산은 2014년 연료전지사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정한 뒤 국내 선도 업체인 퓨얼셀파워와 건물용 연료전지업체인 미국 클리어에지파워를 전격 인수했다. 지난해 연료전지사업은 수주 5870억원, 매출 1680억원, 영업이익 55억원을 기록하며 괜찮은 출발을 알렸다. 2004년 오비맥주를 매각하며 그룹의 주력을 중공업 중심으로 바꾼 두산이 지난해 면세점 사업에 뛰어든 데도 박 회장의 뜻이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박 회장이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덕목은 부지런함과 전략적 사고다. 재계 관계자는 “120년 역사를 가진 두산은 위기의 순간마다 변화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했다”며 “박 회장이 앞으로 어떤 승부수를 던질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공군 참모총장 출신인 김인기 전 국회의원의 딸 김소영 여사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