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서사시 ‘소년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에서 신트라를 ‘위대한 에덴’이라고 노래했다. 시인의 말처럼 신트라는 울창한 숲 속에 묻혀 있는 초록의 낙원이다. 숲 한가운데는 마치 보석처럼 아름다운 궁이 들어서 있다. 궁의 뜰에 봄이 오면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꽃말을 품은 동백이 빨갛게 피어난다. 신트라를 향한 바이런의 사랑 고백처럼 눈부시게 활짝 말이다.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페나 성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페나 성
‘달의 언덕’ 위 ‘마법의 성’ 페나

신트라는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30㎞ 떨어진 소도시다. 신트라는 켈트어로 ‘달의 언덕’이란 뜻을 담고 있다. 신트라의 가파른 산비탈에는 왕족·귀족이 지은 낭만주의 건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역사가 깃든 유적이 조화를 이룬 덕에 1995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신트라 기차역 앞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숲길을 지나면 페나 성에 도착한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페나 성에선 초록의 기운이 흠뻑 느껴진다. 성을 향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온몸으로 피톤치드가 스며드는 기분이다.

빨강, 노랑의 봄꽃처럼 화사한 페나 성은 여왕을 위한 별궁이다. 1840년 페르난두 2세는 폐허가 된 수도원 터에 아내 마리아 2세를 위해 페나 성을 지었다.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만든 건축가를 초빙해 ‘낭만주의 건축’의 결정판을 완성했다. 독일식 둥근 첨탑, 아랍풍 파란 타일 벽, 마누엘 양식의 창 등 각국의 건축 양식이 한데 섞인 모양이 테마파크를 닮았다. 그래서일까? 곳곳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여행객의 표정이 마치 놀이기구를 탄 아이처럼 해맑다.

해발 500m의 페나 성에서 내려다보는 ‘무어인의 성’은 웅장하고 남성적인 풍경이어서 관광객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8~9세기께 무어인들이 지은 요새인 무어인의 성은 산등성이를 따라 누워 있는 용처럼 구불구불 이어진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 아래로는 숲 속에 폭 안긴 신트라 성이, 위로는 산꼭대기 페나 성이 한눈에 담긴다.
무어성에서 내려다 본 신트라 성과 마을
무어성에서 내려다 본 신트라 성과 마을
포르투갈 유일의 중세 왕궁, 신트라 성

마을로 내려오니 백설탕처럼 하얀 신트라 성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무어인들이 지은 성을 12세기 포르투갈 왕가에서 궁으로 개조했다. 이 때문에 한 건물에 아랍풍과 포르투갈 특유의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마누엘 양식이 공존한다. 강력한 흡입력으로 음식 냄새를 싹 날려준다는 거대한 원뿔형 굴뚝은 무어인이 남긴 자취이고, 마누엘 양식의 창은 포르투갈의 흔적이다.

신트라 성의 매력은 단정한 겉모습보다 화려한 내부다. 왕실 무도회가 열렸던 ‘백조의 방’ 천장에는 백조 27마리가, 필리파 여왕을 위해 만든 ‘까치의 방’에는 176마리의 까치가 그려져 있다. 수많은 방 중 압권은 ‘문장의 방’이다. 돔형 천장엔 74개의 귀족 문양이 아로새겨져 있고, 벽엔 사냥을 즐기는 왕족의 모습을 담은 아줄레주(타일 위에 그림을 그려놓은 포르투갈 특유의 장식)가 가득하다.

나만 알고픈 비밀의 정원, 헤갈레이라의 별장

신트라 궁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헤갈레이라의 별장이 있다. ‘19세기의 뇌섹남’, 카르발료 몬테이루의 여름 별장이다. 브라질에서 태어나 코임브라법대를 졸업하고 커피 무역으로 큰돈을 번 그는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은 감성적인 백만장자였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조각가를 고용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배경처럼 신비로운 정원과 저택을 완성했다.

헤갈레이라의 별장 정원에 들어서자 부슬부슬 봄비가 내린다. 3000여종이 넘는 식물이 살고 있는 신트라는 습기가 많고 날씨가 변화무쌍하기로 유명하다. 한층 짙어진 숲의 향기에 자꾸 심호흡을 하게 된다. 아로마 테라피가 따로 없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선율처럼 서정적인 빗소리, 빗속에서 정원의 색깔은 더욱 선명해졌고 향은 짙어졌다.

여행정보

서울에서 포르투갈 신트라로 가는 직항은 없다. 유럽 주요 도시를 거쳐 수도 리스본으로 들어가야 한다. 리스본 호시우 기차역에서 국철을 타면 신트라로 한 번에 갈 수 있다. 리스본 카드나 신트라 1일권을 사면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다. 기차 시간은 포르투갈 철도 홈페이지(cp.p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트라 내에서는 주요 관광지 순환버스(433, 434, 435번)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화폐는 유로를 쓰며 시간은 한국보다 9시간 늦다. 신트라에서 꼭 맛봐야 할 디저트는 피리퀴타의 트라베세이루(travesseiro). ‘베개’라는 뜻인데, 설탕을 뿌린 바삭하고 기다란 베개 모양의 페이스트리 안에 달콤한 크림을 꽉 채웠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달콤함이 온 입안에 퍼진다. 커피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신트라=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