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매년 100개씩 늘어나는 중소로펌…"전문성 없인 생존 힘들다"
검사장 출신인 A변호사는 수년간 단독으로 개업하다 지난해 법무법인으로 조직 형태를 바꿨다. 올해는 판사 출신을 영입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등 검찰 요직을 두루 거친 터라 개업 초창기에는 사건이 줄을 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관 약발’이 떨어져 구성원을 보충하고, 업무 방식을 새롭게 바꿀 필요가 있었다. A변호사는 “다양한 구성원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중소형 법무법인(로펌)이 우후죽순 식으로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붕어빵처럼 대부분 인력 구성이나 운영 방식이 엇비슷해 차별화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주머니 따로 찬 ‘무늬만 로펌’이 태반

8일 법무부에 따르면 법무법인 숫자는 매년 약 100개씩 증가하고 있다. 2011년 5월 법무법인 설립 요건이 총 변호사 5명에서 3명으로 줄어든 데다 변호사의 절대 규모가 매년 1500명 이상씩 불어난 결과다. 하지만 법무법인의 운영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5명 안팎 소형 법무법인은 말이 법인이지 실상은 각자가 ‘주머니’를 따로 찬 채 사무실 공간과 법인 명칭만 공유하는 ‘한지붕 다가구’ 형태가 태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 구성도 공식처럼 천편일률적이다.

최근 설립된 H사의 경우 부장검사 출신인 대표가 사법연수원을 나온 10년 안팎 경력의 파트너 변호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한 신참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10명으로 법무법인을 차렸다.

법인은 아니지만 3~5명의 변호사가 사무실 명칭을 함께 쓰는 합동법률사무소 형태도 많다. 비용을 아끼고 단독 개업에 따른 위험 부담도 줄이기 위해서다. 공직자윤리법 강화로 대형 로펌행이 막힌 고위급 검찰 출신이 주로 애용한다. 검사장 출신인 B변호사는 “예전 같으면 검사장 출신은 2, 3년 내에 혼자서 수십억원을 벌었지만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제살 깎기 대신 전문성 키워야

국내 법률시장의 전체 크기는 정체 상태지만 비슷한 유형의 법무법인이 쏟아져 나오면서 제살 깎기 경쟁만 치열해졌다.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리던 변호사와 동업하기로 한 고위간부 출신 C변호사는 “검찰 인사가 매년 있어서 1년만 지나도 담당이 달라지는데 인맥으로 어떻게 먹고살겠느냐”며 “2, 3년이면 전관 약발이 다 떨어진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법률자문으로 유명했던 중형 로펌 W의 한 변호사는 “최근 5년 동안 회사가 성장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간판 격이던 일부 변호사가 빠져 나가면서 소송, 회사법 대리 중심의 평범한 로펌 중 하나로 전락한 탓이다. 그는 “그나마 단골인 기업 고객이 있어서 그럭저럭 꾸려가고 있다”며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영미계 로펌과 합작하는 방안을 돌파구의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범수 변호사는 작년 10월 대형 로펌 세종을 뛰쳐나와 부티크 로펌인 케이엘파트너스를 차렸다. 국내외 변호사 8명이 전부인 단출한 살림이지만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위원인 김 변호사를 비롯해 국제분쟁·국제거래 분야 경쟁력만큼은 대형 로펌 못지 않다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김 변호사는 “시장에서 인정하는 전문성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