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무솔리니
무솔리니는 여러 면에서 고대의 폭군과 비슷했다. 매사를 기분 내키는 대로 했다.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대장간 집 아들로 태어나 급진 좌파 진영에 투신했다가 곧 극우로 변신했다. 왕정 타도를 외치다 국왕 보호자를 자처하더니 왕정 반대론자로 돌아서기도 했다. 무신론자였다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자신을 ‘신이 이탈리아에 내린 선물’이라고 떠벌렸다.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방법도 그랬다. 학창시절부터 툭하면 폭력으로 문제를 일으키더니 파시즘의 행동대인 ‘검은 셔츠’를 결성해 온갖 린치로 공포감을 조성하고 로마식 경례에 원수 군복 차림으로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호언했다. 청중의 마음을 뒤흔드는 특유의 선동술까지 더했다. 그가 사람들의 불만에 분노라는 불을 붙이자마자 흥분한 군중은 미쳐 날뛰었다.

한마디로 그의 기질은 좌충우돌과 예측불허였다. 미혼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처녀 총각에게 독신세를 물렸다. 뭐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겁을 주거나 금지해서 없애버렸다. 이런 성향은 그보다 여섯 살 아래인 독일의 히틀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히틀러의 첫 봉기는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에 자극받은 것이었다.

그런 그의 이름이 21세기 미국 대선 판에 등장했다. 공화당 후보 트럼프가 과격한 언행으로 ‘현대판 무솔리니’ 소리를 듣고 있다. 그는 ‘양으로 100년을 살기보다 사자로 하루를 살겠다’는 무솔리니의 선동 글귀를 리트윗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멕시코 이민자들을 비하하다 멕시코 대통령의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공화당 내의 반트럼프 기류도 심상찮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트럼프의 막말과 탈세 의혹, 인종차별주의 등을 거론하며 “그는 어떤 면에서도 공화당원이 아니니 다른 주자들을 뽑아달라”고 했다.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칼럼니스트인 로저 코언은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칼럼에서 전쟁에서 패배한 뒤 공포와 분노,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을 때 무솔리니나 히틀러 같은 선동꾼이 전면에 등장한 사실을 일깨웠다.

그런데도 트럼프의 지지도는 내려가지 않고 있다. 무솔리니나 히틀러처럼 그도 무엇을 건드려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인종차별적 연설이나 저속한 말투, 무솔리니 흉내를 내면서 논란을 부르는데도 욕 먹을수록 인기가 치솟는 기현상은 바로 백인 중산층과 블루칼라 등의 잠재된 분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민족과 타종교에 배타적인 일부 보수층의 표심도 그를 ‘21세기 무솔리니’로 만드는 한 요인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