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맹희 명예회장 유족에 '한정상속' 승인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3남매가 아버지 고 이맹희 명예회장이 남긴 200억원의 빚을 사실상 면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 명예회장은 한때 삼성 후계자로 꼽혔지만 낙마했다.

그는 수십년간 국외 체류 끝에 작년 8월 중국에서 84세를 일기로 숨졌다.

재벌총수 일가가 거액의 채무를 남기고 작고한 것은 이례적이다.

9일 법조계와 CJ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이 명예회장의 부인 손복남 고문과 장남 이재현 회장 등 삼남매가 낸 '한정상속승인 신고'가 올해 1월 중순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한정승인이란 상속 자산액수만큼만 상속 채무를 책임지는 제도다.

유족이 법원에 신고한 이 명예회장의 자산은 6억여원이었다.

하지만 채무는 180여억원에 달했다.

채무에서 자산을 제한 금액은 채권자가 받을 길이 없다.

CJ그룹 관계자는 "고인은 수십년간 해외 등지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왔다"며 "어떤 경제적 거래를 했고 그 과정에서 채무가 얼마나 있었는지 등을 가늠할 수 없어 한정승인을 신청했다"고 했다.

한정승인은 법원이 직접 고인의 자산과 채무를 조사해 액수를 확정 지은 것이 아니다.

채권자가 한정승인을 받은 유족에게 소송을 건 뒤 망자의 숨겨진 자산을 찾아 돈을 돌려받는 경우도 있다.

이 명예회장이 가족에게 거액의 빚을 남긴 건 2012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상대로 낸 유산분쟁 소송 때문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명예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유산 9천400억원을 요구했으나 1·2심 모두 패했다.

소송가액에 비례해 책정되는 인지대와 변호사 선임비로만 200억원 넘게 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예회장은 삼성그룹 초기 제일제당 대표 등을 맡는 등 그룹을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은퇴한 이병철 회장이 복귀하는 과정에서 그룹 비리를 청와대에 투서한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후계구도에서 배제됐다.

1976년 3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그룹 후계자로 공표되자 이 명예회장은 삼성가를 떠났다.

그는 개인적으로 제일비료를 설립했다가 실패를 맛본 뒤 1980년대부터 30여년간 외국에 머물며 낭인 생활을 했다.

일각에선 수조원대의 부를 쌓은 이재현 회장 삼남매가 아버지의 상속을 포기한 게 적절하냐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한다.

해외에서 떠돌던 이 명예회장에게 누군가 수백억이란 거금을 빌려준 건 삼남매를 의식하지 않고선 있기 어려운 일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법조계 관계자는 "재벌 총수 일가가 채무를 면제받는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며 "연대보증을 선 게 아닌 이상 이재현 회장 등이 아버지의 개인채무를 떠안을 법적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이 명예회장이 지난해 8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숨졌을 때 장남 이재현 회장은 탈세·배임·횡령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해있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상고한 상태다.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bang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