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장식 없는 독일 뮌헨 개선문의 남면. 옥당 제공
아무런 장식 없는 독일 뮌헨 개선문의 남면. 옥당 제공
독일 뮌헨 개선문은 묘한 기념비다. 고대 로마 양식으로 웅장하게 지어졌다는 점에서는 영국 런던 개선문(웰링턴 아치)이나 프랑스 파리 개선문과 비슷하다. 하지만 화려한 북면 대신 남면을 바라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남면 상단에는 아무것도 없다. 장식 없는 빈 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남면은 2차 세계대전 때 훼손됐다. 독일은 이를 보수하면서 파괴된 세부 양식을 복구하는 대신 빈 돌 하단에 ‘승리에 헌정되고 전쟁으로 파괴돼 평화를 역설하는’이란 문구를 새겨 넣었다. 런던과 파리의 개선문이 승리의 순간만을 떠올리게 해 준다면 뮌헨의 개선문은 한 차례 파괴된 사실을 함께 알려준다. 독일의 일부가 언제든 적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도 담았다. 뮌헨 개선문은 바이에른의 군대에 헌정됐는데, 바이에른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와 연합해 독일의 다른 국가들을 공격했다.

양면성을 지닌 이 건축물은 일관성 있는 국가 신화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내리 실패한 독일의 역사와 닮았다. 그간 독일 학자들은 1차 세계대전 패배, 바이마르 공화국 붕괴, 나치 정권의 범죄 등 훼손된 기억과 18~19세기 독일이 거둔 빛나는 학문적·문화적 성과 등을 한 바구니에 담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누구도 단일한 국가 서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애초에 독일은 정치 분권화 기간이 길었다. 신성로마제국은 소속감의 토대를 마련했을 뿐이다.

런던 국립미술관장과 영국박물관장을 지낸 영국의 미술사학자 닐 맥그리거는 《독일사 산책》에서 혼란스러운 독일사를 연대기 순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왜 독일의 역사가 지역 중심의 서사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지(1부), 독일의 국가 정체성이 어떻게 태동하고 자라 왔는지(2부), 독일의 제조업 경쟁력이 언제부터 뿌리내렸는지(4부) 등 주제에 따라 여러 얼굴을 한 독일의 모습을 짚는다.

나라를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묘사한 것이 독특하다. 독일인 대부분이 공유하는 사람과 물건, 건물과 장소에서 공통된 기억을 길어올린다. 독일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각가 틸만 리멘슈나이더(1460~1531)의 작품을 통해선 종교개혁의 불씨를 보고, 판화가 겸 조각가 케테 콜비츠에게선 프로이센의 역사를 본다. 발할라 기념관에는 굴욕적인 나폴레옹 치하에서 ‘독일다움’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바이에른 왕국 루트비히 1세의 고민이 담겼다.

원제는 ‘독일, 국가의 기억(Germany, memories of a nation)’이다. ‘독일사 산책’이란 한가로운 느낌의 의역된 제목과 긴장감이 떨어지는 커버 디자인, 제목 서체 탓에 가벼운 역사 대중서로 보이기 쉽지만 역사의 정의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 세심한 카테고리 분류가 돋보인다. 불가피하게 합일성을 찾을 수 없었던 독일의 역사를 더듬어가다 보면 독일 역사학자 미하엘 슈튀르머의 말을 되새기게 된다. “오랫동안 독일에서 역사의 목적은 그런 일이 절대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