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에만 33조 쏟아부은 '구글의 힘'
1996년 2월10일 IBM의 컴퓨터 딥블루가 당시 체스 세계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는 ‘사건’이 일어났다.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지던, 체스 챔피언을 꺾은 인공지능(AI) 컴퓨터가 등장한 것이다.

이때부터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각국 기업은 인공지능에 주목하고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렇다 할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딥블루 이후 IBM은 인공지능 기능을 고도화한 자연어 소통 슈퍼컴퓨터 왓슨에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했다. 구글은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14년간 인공지능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데만 280억달러(약 33조7000억원)를 쏟아부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최근 10억달러를 투자해 인공지능연구소를 설립했다. 중국 인터넷기업 바이두는 실리콘밸리에 3억달러(약 3600억원)를 투자해 인공지능 분야를 연구하는 딥러닝연구소를 세웠다.

한국의 인공지능 관련 투자액은 미미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의 인공지능 분야 투자는 180억원에 불과했다. 민간 기업들이 자율주행자동차, 빅데이터, 로보어드바이저 분야에 투자하고 있지만 선진 기술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에 따르면 2015년 정보통신기술(ICT) 수준 조사에서 한국 인공지능은 선진국과 2.6년의 기술 격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 간 두 번째 대국에서는 막판까지 접전을 벌이다 알파고가 211수 만에 또 불계승했다. 세 번째 대국은 12일 오후 1시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다.

인공지능이 몰고 올 산업혁명에 올라타기 위해선 관련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두환 포스코ICT 사장은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것을 계기로 인공지능의 수용이 굉장히 빨라질 것”이라며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분야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6년 이후 정부의 인공지능 관련 투자액을 따져봐도 50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년간 투자금액이 중국 바이두의 지난 한 해 인공지능 투자액의 7분의 1이다. 구글이 14년 동안 인공지능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인수한 데 쓴 280억달러의 0.15%에 불과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한 미 벤처캐피털(VC)의 투자금액만 지난해 25억달러(약 3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인공지능이 급부상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세우는 데 고심하고 있다. 연초 미래창조과학부는 인공지능 분야를 지원하는 데 3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분주하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은 9일 “인공지능 관련 한국의 기술 수준, 선진국과의 격차, 필요한 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며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 및 연구개발(R&D), 예산 지원 등은 미래부가, 관련 융합산업 정책은 산업부가 담당하는 등 관련 지원책이 각 부처에 흩어져 있어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 분야는 오랜 기간의 데이터 및 기술 축적이 핵심이어서 한 번 뒤처지면 따라가기 힘들다”며 “정부뿐 아니라 업계, 학계를 아우르는 좀 더 적극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원기/김재후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