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61)의 난민포용 정책이 지방선거에서 싸늘한 평가를 받았다. 13일(현지시간) 독일 3개주에서 치러진 주의회선거에서 메르켈 총리가 대표인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기민당)은 한 곳에서만 1위를 차지했다.

반면 난민수용 반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건 극우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3당으로 약진했다. AfD는 블룸버그통신이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 때문에 ‘독일의 여성 트럼프’로 지칭한 40대 여성 대표 프라우케 페트리(41)가 이끄는 정당이다.
난민 문제에 발목잡힌 메르켈…지방선거 패배
◆기민당, 3곳 중 1곳에서만 제1당

파이낸셜타임스(FT)와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FAZ) 등에 따르면 기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인구 1072만명의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와 401만명의 라인란트팔츠주에서 각각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에 밀려 제1당을 내줬다.

난민 문제에 발목잡힌 메르켈…지방선거 패배
인구 224만명의 작센안할트주에서만 1위를 차지했다. 반(反)난민정책을 주장하던 AfD는 작센안할트주에서 제2당으로 부상했고, 바덴뷔르템베르크와 라인란트팔츠에서는 두 자릿수 득표율로 제3당으로 올라섰다. 2013년 2월 출범한 AfD는 이날 선전으로 독일 전체 16개주 가운데 8개주 의회에서 의석을 확보했다. 이번에 지방선거가 치러진 3개주의 인구는 독일 전체인구의 20%가 넘는다.

메르켈 총리가 선거를 앞두고 “AfD는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정당”이라고 비난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표심은 메르켈 총리보다 스무 살 어린 페트리 AfD 대표에게 쏠렸다. 페트리 대표는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PEGIDA·페기다)’ 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 1월 초 독일 서부도시 쾰른에서 난민에 의한 집단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자 페트리는 “난민환대 정책이 부른 참담한 결과”라며 “국경에서 불법 난민에 대한 총기 발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의 난민수용 정책에 따른 독일인의 불안감을 페트리가 효과적으로 파고들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FT는 “메르켈 총리가 난민정책을 고수하려다 우익 대중영합주의자의 반발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선거에선 기민당의 연정 파트너 사회민주당의 득표율도 최대 10%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또 독일와인 홍보대사로 뽑혀 ‘와인여왕’으로 불리는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 율리아 클뢰크너(43)는 라인란트팔츠 주총리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작년 110만명의 난민 수용한 메르켈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110만여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우익 정당 등이 주도하는 세력으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았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세력이 약화하면서 상당수 이라크 난민이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고, 메르켈 총리가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했는데도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EU)과 함께 난민 유입을 억제하는 한편 대규모 난민 발생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인 시리아 내전을 해결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가시적 효과를 기대하기까진 갈 길이 멀다.

터키를 유럽행을 원하는 난민의 ‘대합실’로 삼는 대신 EU가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은 지원 규모를 놓고 아직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UN 중재로 18개월 뒤 대통령선거와 총선거를 다시 치르는 방안이 나왔지만 확정된 것이 아니다. 외신은 “메르켈 총리가 난민 해법을 조속히 찾지 못하면 AfD 같은 극우세력이 연방의회까지 세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