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아프리카 탐험가' 리빙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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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유럽에 아프리카 대륙을 본격적으로 알린 탐험가이자 선교사, 의사다. “영국 제국주의 사고방식의 상징”이란 비판도 있지만, 그의 탐험 정신은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리빙스턴은 1813년 3월19일 영국 스코틀랜드 블랜타이어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학으로 글래스고대에서 신학과 의학을 전공했고, 1840년 런던선교회 소속 의료선교사로 남아프리카 지역에 파견된 뒤 현지 탐험을 시작했다.
1855년 유럽인 최초로 잠베지강 중류에 있는 거대 폭포를 발견하고,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로 명명했다. 폭 1.7㎞, 높이 108m인 이 폭포는 현지어론 ‘모시 오아 툰야(천둥소리)’라고 불린다. 또 당시 아프리카 지역에서 성행하던 노예무역의 잔악상도 폭로했다.
1871년 아프리카 중부 탕가니카호 인근에서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다 헨리 모턴 스탠리의 탐험대를 만나 극적으로 구조됐다. 그러나 1873년 5월1일 방웨울루호 인근에서 말라리아와 이질에 걸려 6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유해는 영국 웨스트민스터사원에 안장됐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1855년 유럽인 최초로 잠베지강 중류에 있는 거대 폭포를 발견하고,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로 명명했다. 폭 1.7㎞, 높이 108m인 이 폭포는 현지어론 ‘모시 오아 툰야(천둥소리)’라고 불린다. 또 당시 아프리카 지역에서 성행하던 노예무역의 잔악상도 폭로했다.
1871년 아프리카 중부 탕가니카호 인근에서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다 헨리 모턴 스탠리의 탐험대를 만나 극적으로 구조됐다. 그러나 1873년 5월1일 방웨울루호 인근에서 말라리아와 이질에 걸려 6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유해는 영국 웨스트민스터사원에 안장됐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