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신탁을 매매로 간주해 더 많은 취득세를 물린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조세법 조문이 원래 입법 취지와 상충할 때는 취지보다 법조문에 따라 과세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행정법원 6부(부장판사 김정숙)는 메리츠화재보험이 서울 중구청을 상대로 낸 취득세 등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메리츠화재는 2012년 4월 A사와 ‘부동산매입 대리사무 용역계약’을 맺었다. 메리츠화재가 사옥을 짓기 위해 서울시내 땅을 사려고 하는데 매입 절차를 A사가 대신 밟아주는 내용이었다. A사는 땅을 사기 위해 소유자인 B사와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A사는 땅의 소유권을 B사에서 바로 받아오지 않고 ‘부동산 처분 신탁계약’을 맺어 중간에 C신탁회사를 끼워넣었다. 땅 소유권이 B사(위탁자)에서 C사(수탁자)로 넘어오고, 그 땅을 다시 A사(수익자)가 넘겨받는 구조다. 이후 메리츠화재와 A사는 수익자를 A사에서 메리츠화재로 바꾸는 내용의 별도 계약을 맺었다. 결과적으로 메리츠화재가 B사에서 땅을 산 것과 같은 효과를 낸 것이다.

메리츠화재는 ‘부동산을 수탁자로부터 수익자에게 이전할 때 취득세율 3%를 적용한다’는 구 지방세법 11조 1항 4호에 따라 모두 11억9000여만원의 세금을 신고하고 냈다. 이에 대해 중구청은 “형식상 신탁이어도 실질적으로 매매일 경우 다른 매매계약과 같은 취득세율(4%)을 적용해야 형평에 맞다”며 세율 4%를 적용해 4억여원을 경정 고지했다. 중구청이 이런 논리를 편 것은 당시 행정자치부와 서울시가 같은 유권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메리츠화재는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조세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 사건 조항은 특정 유형의 신탁에만 적용된다는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며 “법문과 달리 중구청의 방식대로 해석하면 납세 의무자의 예측 가능성이 침해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을 대리한 정종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행자부 유권해석대로 세금을 낸 사례가 많아 환급 요구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