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벡스코에서 지난 18일 열린 ‘부산 기업인과 한국경제신문 데스크 오찬간담회’에서 부산 지역 기업인들(왼쪽)이 위기에 빠진 국내 제조업 재도약 방안과 업계 애로사항을 말하고 있다. 부산 기업인들의 제안을 경청하고 있는 한경 편집국 데스크단(오른쪽). 간담회에서 부산 기업인과 한경 데스크들은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하며 두 시간 가까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부산=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부산 벡스코에서 지난 18일 열린 ‘부산 기업인과 한국경제신문 데스크 오찬간담회’에서 부산 지역 기업인들(왼쪽)이 위기에 빠진 국내 제조업 재도약 방안과 업계 애로사항을 말하고 있다. 부산 기업인들의 제안을 경청하고 있는 한경 편집국 데스크단(오른쪽). 간담회에서 부산 기업인과 한경 데스크들은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하며 두 시간 가까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부산=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34개국) 회원국이라고 하면서 법과 제도 적용 때는 후진국처럼 오락가락 합니다.”(오형근 대한제강 부회장)

“수명을 다한 쓸모없는 옛날 법은 그대로 두고 새 법만 계속 추가하니 거미줄 규제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이채윤 리노공업 회장)

“요즘 서울 재계에서는 ‘부산 가면 배철수를 만나지 말라’는 말이 돈다고 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배(조선), 철강, 수송(물류·해운)업계를 뜻합니다. 도움이 절실한데 이 정도로 외면받는 분위기입니다.”(박태호 진흥스틸 회장)

[부산 기업인-한경 데스크 현장 토론] "부산 '배·철·수' 피하라는 말까지 돌아…지방 기업엔 인재 안 와"
한국경제신문사와 부산상공회의소 등이 지난 18일 부산 벡스코에서 공동 개최한 ‘부산 해운대 도시브랜드 전략 콘퍼런스’ 부대행사로 열린 ‘부산 기업인과 한경 데스크 오찬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은 침체에 빠진 조선·철강 등 지역 주력 산업의 어려운 현실과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쏟아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난상토론에서 부산 기업인들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때는 미국 등 선진국 경제는 나쁘지 않아 수출로 극복했는데 지금은 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고 토로했다. 일부 기업인은 중소기업 지원에 소극적인 은행 등 금융회사와 정부의 무관심한 행태도 꼬집었다.

지방에 있는 탓에 수도권에 비해 인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오형근 대한제강 부회장은 “젊은이들은 기회만 되면 부산에서 살지 않고 서울에 살려고 한다”며 “자식도 서울에 뺏겼는데 최근 사드(THAAD) 미사일 배치와 관련해 기장군이 후보지로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이학영 한경 편집국장=부산이 한국 동남권과 일본 서남부를 아우르는 메갈로폴리스(대도시 집중지대)의 맏형으로 성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산 기업인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창업해 기업하는 사람은 전생에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 기업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남규 광명잉크제조 회장=기업을 40년 가까이 경영하면서 이만큼 어려운 적은 처음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의 양적 완화로 환율이 올라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주요 수출시장인 신흥국까지 침체됐다.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기 어렵다고 예측한다. 반면 정부의 지원은 미미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녹산공단에 금융감독원 직원이 파견돼 은행들이 기업을 지원하는지 감독했고, 신용보증기금도 밤 12시까지 보증서 발급 업무를 해줬다. 지금은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니까 은행들이 지원을 꺼리고 있다.

[부산 기업인-한경 데스크 현장 토론] "부산 '배·철·수' 피하라는 말까지 돌아…지방 기업엔 인재 안 와"
▷오형근 부회장=철강업계는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제품은 미국에 수출하면 곧바로 반덤핑 제소를 당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중국 업체들이 철근 공급시장에서 활개를 친다. 건설사나 일반인들은 아파트 원가가 내려가 좋다고 한다. 이대로 대책 없이 우리 업체가 중국에 밀려 죽고 나면 중국 업체가 마음 놓고 가격을 올릴 것이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할 때 전기요금이 2년에 세 차례 올랐다. 지금 유가가 30달러 선으로 떨어졌는데도 전기료는 그대로다. 평상시보다 높은 여름과 겨울철 전기요금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박태호 회장=중국 업체의 철강 덤핑 수출을 국제기구에 제소하고 싶어도 정부에선 ‘웬만하면 참아라’고 한다. 중국이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업종에서 무역 보복을 할까 두려워서다. 우리 업체는 수시로 미국으로부터 덤핑 제소를 받고 미국 변호사, 회계사 비용으로 수십억원을 쓴다.

▷정용환 서번산업엔지니어링 회장=기계업계는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주문 물량 감소로 위기를 겪고 있다. 부산 제조업에서 기계업종 비중이 44%를 차지하지만, 뿌리산업이기 때문에 덜 알려져 있다. 울산과 창원이 발전한 것은 부산에 뿌리산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기계조합 소속 회사가 400여개인데, 50년 이상 된 곳이 30~40개, 30년 이상 역사를 가진 곳이 60여개다. 외형이 작고 자기 브랜드 없이 일하고 있어 소외받고 있다.

▷최범영 이원솔루텍 회장=국내 자동차 업체가 해외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양이 국내 생산을 넘어섰다. 현대·기아자동차를 제외한 르노, GM은 외국 기업인데, 이들은 한국에서 신차 개발을 안 한다. 1년 내내 노사문제에 시달리느라 신제품 개발 여력이 없다. 한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한국에 파는 게 아니라 외국 완제품을 한국에서 파는 역할만 한다. 자동차부품 특성상 오늘 계약해서 내일 납품하는 게 아니고 3~5년 후 신제품에 들어갈 부품을 미리 협상해 생산하기 때문에 외국에서 개발이 이뤄지면 한국 업체들은 납품할 기회를 잃는다.

▷정용환 회장=기업가 정신으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로 치고 나가야 하는데, 인재들이 안 온다. 부산에서 졸업한 공대 출신 취업 지망생이 기계, 뿌리산업 쪽으로 오지 않고 대기업이나 공무원시험에만 매달린다. 1970~1980년대는 직장생활하며 재형저축에 가입하면 전세금 정도는 마련했다. 정책적으로 실업계·이공계를 우대했는데 지금은 그런 정책이 미진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유망한 젊은이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혜택을 주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창섭 삼덕통상 회장=신발산업도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느냐 미래 산업으로 가느냐 갈림길에 서 있다. 신발 업체에는 나이든 사람이 대부분이고 젊은 직원들은 점점 줄고 있어 10년 후 남아 있는 업체가 거의 없을지 모른다.

▷이남규 회장=외국인 인력도 최근엔 구하기 어렵다. 중소기업은 비용을 들여 신청하고 기다려야 외국인 노동자를 배정받아 고용할 수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는 취업하자마자 바로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게 바뀌었다. 5~6개월 훈련시키면 월급 많은 곳으로 간다.

▷이채윤 리노공업 회장=정부가 규제개혁을 하면서, 앞으로는 새로운 법안 만들면 쓸 데 없는 법안 두 개를 지우는 원칙이 있었으면 한다. 30년 전 만든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는 그대로 두고 새 법만 만들어 쌓이면서 혼란스럽다. 최근 도금조합과 산업단지를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윗사람은 빨리 하라고 하는데 일선에선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될지 모른다고 한다.

▷곽국민 파크랜드 부회장=(경제 문제를)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로 풀어서 문제다. 10년 전 대구의 밀라노 프로젝트에 거액의 예산이 들어갔는데 남은 게 뭐 있나. 섬유 관련 연구소가 수없이 많았는데 원장이나 소장을 보면 전문가는 거의 없고 공무원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다 보니 성과가 미진했다.

▷김경조 부산벤처기업협회 회장(경성산업 회장)=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상생협력이 한때 이슈가 됐지만 어느새 희석되고 사라지고 있다. 부산의 기업들은 90% 이상이 대기업과 연계된 사업을 한다. 자체 경쟁력을 갖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기업은 10%에도 못 미친다. 협력업체는 매년 3~4월에는 언제 본사에서 노사분쟁이 벌어질지 몰라 불안하다. 한 조선업 협력사는 30% 단가 인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어 문을 닫았다.

중소기업 정책자금 대출금리가 시중금리보다 상당히 높다는 점도 문제다. 열악한 환경의 중소기업은 정책자금밖에 쓸 수 없는데 시중금리보다 높은 정책자금 금리는 개선돼야 한다.

▷이학영 국장=정책자금 대출의 금리가 시중금리보다 항상 높은가.

▷김경조 회장=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시중금리가 연 4~5%일 때만 해도 비슷했는데 시중금리가 떨어지면서 달라졌다. 요즘 시중금리는 연 2~3% 정도인데 정책금리가 연 3~4%대다.

▷이채윤 회장=정부에서 일할 때 정책 대상자들과 의견을 나눴으면 한다. 남한테 월급 한 번 안 줘본 사람들이 정책을 입안하니까 문제다. 가능하면 돈 줄 사람하고 받을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는 것이 바람직하다.

토론회 참석한 한경 데스크

이학영 편집국장, 유근석 부국장, 이재창 지식사회부장, 이익원 IT과학부장, 홍영식 정치부장, 하영춘 산업부장, 김철수 건설부동산부장, 차병석 경제부장, 조일훈 증권부장, 김태철 중소기업부장, 윤성민 생활경제부장, 김수언 금융부장, 오연근 한국경제TV 산업팀장, 전준민 한국경제TV 증권팀장

부산=김태현/이현일/고재연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