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 말 없다”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1일 오후 이종걸 원내대표와 만나 4·13 총선 비례대표 후보 추천 문제를 논의한 뒤 서울 구기동 자택으로 돌아오고 있다. 연합뉴스
< “할 말 없다”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1일 오후 이종걸 원내대표와 만나 4·13 총선 비례대표 후보 추천 문제를 논의한 뒤 서울 구기동 자택으로 돌아오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가 21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비례대표 순번 배치를 본인에게 위임하기로 한 것은 4·13 총선을 앞두고 당내 분란이 계속되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중앙위는 21일 밤부터 22일 새벽까지 진행된 회의에서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을 15명으로 보고, 이 중 김 대표가 안정권에 전략공천할 수 있는 몫으로 4명을 안배하기로 했다. 중앙위는 김 대표 외에 박경미 홍익대 수학과 교수,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수 당 대변인을 안정권에 배치했다. 또 심기준 강원도당위원장은 당세가 취약한 곳의 전략지역 몫으로, 송옥주 당 홍보국장은 당직자 몫으로 당선 안정권에 포함시켰다. 청년 비례대표와 노동계 비례대표도 안정권에 한 명씩 들어갔다.

김 대표는 중앙위에 앞서 열린 비대위에서 자신의 비례대표 순번을 2번에서 14번으로 조정하는 안이 의결되자 강하게 반발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를 만나 대표직 사퇴 의사까지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그따위로 대접하는 정당에 가서 일해주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며 “대표직에 매력을 못 느낀다. 인격적 모독을 받고 더 이상 흥미가 없다”고 했다. 그는 “나를 무슨 욕심 많은 노인네처럼 만들어 가지고…”라며 “(주류 세력이) 지금 정체성 때문에 그러는 거다. 그게 핵심인데 왜 자꾸 딴소리해서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려고 그러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날 오전까지도 당내 주류는 김 대표를 비판했다. 이석현 정세균 박병석 원혜영 추미애 유인태 의원 등 중진들은 성명을 내고 “논란으로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되지 못할 후보자들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당헌대로 소수계층과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현미 의원도 트위터에 “비례대표 명단을 보면 우리가 어떤 당이며 뭘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을(乙)들, 농어민, 경제민주화, 남북평화는 어디에 있느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비례대표 공천 논란이 김 대표와 당내 친노(친노무현) 주류세력 간 세력 다툼 양상으로 비쳐지자 중앙위를 앞두고 친노 진영에서 “김 대표가 비례 2번을 받는 것도 괜찮다”는 반응이 나왔다. 친노 장외 인사인 문성근 국민의명령 상임위원장은 트위터에 “김 대표의 비례 2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총선) 승리가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와 친분이 깊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혁신위원)도 페이스북에 “김 대표의 순위는 그분에게 맡기는 것이 예의”라며 “김 대표의 정무적 판단과 군주적 리더십에 동의하지 않는 점이 많지만 예의는 예의다”고 말했다. 운동권 출신인 우상호 의원은 중앙위 회의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19대 총선 때 한명숙 대표도 본인을 비례대표 공천했지만 그때에는 셀프 공천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내 주류 세력이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를 보인 만큼 당내 갈등이 봉합될지 주목된다. 김 대표가 중앙위 결정을 수용한다면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조기 진화되겠지만, 김 대표가 수용 불가론을 고수하면 논란이 증폭될 가능성이 커 김 대표의 입장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태훈/은정진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