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오페라 입힌 '미녀와 야수'…"협업은 신선한 아이디어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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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오페라'들고 서울 온 현대음악 거장 필립 글래스
영상과 생 음악 동시에 흘러
영화 속 배우들 대사에 맞춰 성악가 네 명이 연기하듯 노래
영상과 생 음악 동시에 흘러
영화 속 배우들 대사에 맞춰 성악가 네 명이 연기하듯 노래
장 콕토(1889~1963)의 직업은 한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시인이자 소설가였으며 극작과 연출을 겸했다. 그림도 그렸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 음악가 에릭 사티, 흥행사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등과 교류하며 1920년대 파리의 현대예술 황금기를 이끌었다.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20세기 초 ‘르네상스 맨’이 당시 새롭게 등장한 장르인 영화를 놓칠 리 없었다. 그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 ‘시인의 피’(1930), ‘미녀와 야수’(1946), ‘오르페’(1949) 등에는 기묘하고 신비로운 콕토만의 시정(詩情)이 녹아 있다.
‘미니멀리즘’ 음악 사조를 확립한 현대음악계의 거장 필립 글래스(79)는 어린 시절부터 콕토의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동경했다. ‘오르페’ ‘미녀와 야수’ ‘앙팡 테리블’(1950) 등 세 작품에 자신의 음악을 입혀 각각 체임버 오페라(오르페·1993년), 필름 오페라(미녀와 야수·1994년), 무용극(앙팡 테리블·1996년)으로 재탄생시켰다. ‘장 콕토 3부작’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미녀와 야수’가 22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했다.
무대에는 영상과 라이브 음악이 동시에 흐른다. 콕토의 영화가 소리 없이 펼쳐지는 동안 성악가 4명이 영화 속 배우들의 대사에 맞춰 노래하고, ‘필립 글래스 앙상블’이 글래스가 작곡한 음악을 연주한다. 글래스는 22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콕토는 본질적인 인간 내면을 특유의 방식으로 표현한 예술가였다”며 “영화에서는 음악이 작업 후반부에 들어가는데, 왜 연기와 음악이 별개로 다뤄지는지 의문이던 차에 우연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미녀와 야수’를 30개 장면으로 나눴다. ‘조각’마다 배우의 대사에 맞는 멜로디를 만들었다. 나중에 조각들을 다시 합쳤다. 그는 “굉장히 논리적이면서도 흥미롭고 쉬운 작업이었다”며 “왜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필름 오페라가 95분간 이어지는 동안 성악가들은 배우처럼 의상을 갖춰 입지는 않지만 연기하듯 서로 교감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노래가 흘러나오면 관객들이 어리둥절해요. 하지만 8분 정도 지나면 익숙해지고, 영화 말미에 해당하는 85~86분쯤에는 영상 캐릭터와 오페라 캐릭터를 하나의 존재로 인지하게 되죠.”
글래스는 1960~1970년대 단순한 악절의 반복·변주를 중시하는 미니멀리즘 사조를 확립했다. 영화음악 작곡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트루먼쇼’ ‘디아워스’ ‘쿤둔’ 등과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등의 영화음악을 그가 작곡했다. 데이비드 보위와 로버트 윌슨, 라비 샹카 등 다양한 예술인과의 교류와 협업을 통해 현대예술의 경계를 확장했다. ‘장 콕토 3부작’은 이 시대의 종합예술인이 앞선 시대의 종합예술인에게 헌사하는 작품인 셈이다. “(콕토를)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지만 엄청난 영감을 줬어요. 늘 협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그는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의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며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접했다. 우디 앨런, 마틴 스콜세지 등 재능 있는 영화감독과의 교류는 그의 영감을 늘 자극했다. 그는 “앞으로도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작업에 참여할 계획”이라며 “협업은 늘 신선한 예술적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23일 LG아트센터, 25~26일 통영국제음악당 무대에 오른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20세기 초 ‘르네상스 맨’이 당시 새롭게 등장한 장르인 영화를 놓칠 리 없었다. 그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 ‘시인의 피’(1930), ‘미녀와 야수’(1946), ‘오르페’(1949) 등에는 기묘하고 신비로운 콕토만의 시정(詩情)이 녹아 있다.
‘미니멀리즘’ 음악 사조를 확립한 현대음악계의 거장 필립 글래스(79)는 어린 시절부터 콕토의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동경했다. ‘오르페’ ‘미녀와 야수’ ‘앙팡 테리블’(1950) 등 세 작품에 자신의 음악을 입혀 각각 체임버 오페라(오르페·1993년), 필름 오페라(미녀와 야수·1994년), 무용극(앙팡 테리블·1996년)으로 재탄생시켰다. ‘장 콕토 3부작’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미녀와 야수’가 22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했다.
무대에는 영상과 라이브 음악이 동시에 흐른다. 콕토의 영화가 소리 없이 펼쳐지는 동안 성악가 4명이 영화 속 배우들의 대사에 맞춰 노래하고, ‘필립 글래스 앙상블’이 글래스가 작곡한 음악을 연주한다. 글래스는 22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콕토는 본질적인 인간 내면을 특유의 방식으로 표현한 예술가였다”며 “영화에서는 음악이 작업 후반부에 들어가는데, 왜 연기와 음악이 별개로 다뤄지는지 의문이던 차에 우연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미녀와 야수’를 30개 장면으로 나눴다. ‘조각’마다 배우의 대사에 맞는 멜로디를 만들었다. 나중에 조각들을 다시 합쳤다. 그는 “굉장히 논리적이면서도 흥미롭고 쉬운 작업이었다”며 “왜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필름 오페라가 95분간 이어지는 동안 성악가들은 배우처럼 의상을 갖춰 입지는 않지만 연기하듯 서로 교감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노래가 흘러나오면 관객들이 어리둥절해요. 하지만 8분 정도 지나면 익숙해지고, 영화 말미에 해당하는 85~86분쯤에는 영상 캐릭터와 오페라 캐릭터를 하나의 존재로 인지하게 되죠.”
글래스는 1960~1970년대 단순한 악절의 반복·변주를 중시하는 미니멀리즘 사조를 확립했다. 영화음악 작곡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트루먼쇼’ ‘디아워스’ ‘쿤둔’ 등과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등의 영화음악을 그가 작곡했다. 데이비드 보위와 로버트 윌슨, 라비 샹카 등 다양한 예술인과의 교류와 협업을 통해 현대예술의 경계를 확장했다. ‘장 콕토 3부작’은 이 시대의 종합예술인이 앞선 시대의 종합예술인에게 헌사하는 작품인 셈이다. “(콕토를)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지만 엄청난 영감을 줬어요. 늘 협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그는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의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며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접했다. 우디 앨런, 마틴 스콜세지 등 재능 있는 영화감독과의 교류는 그의 영감을 늘 자극했다. 그는 “앞으로도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작업에 참여할 계획”이라며 “협업은 늘 신선한 예술적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23일 LG아트센터, 25~26일 통영국제음악당 무대에 오른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