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알파고 간 대국을 보면서 열정이 타올랐어요. 14년 만에 여류국수 타이틀을 탈환하고 싶습니다.” (조혜연 9단)

“이상하게 여류국수와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바둑이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올해엔 꼭 우승해야죠.” (최정 6단)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국으로 달아오른 ‘바둑 열기’가 여류기전으로 이어진다. 국내 최고의 프로여류기전인 제21기 BnBK배 프로여류국수전이 22일 9개월여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이번 대회에는 국내 여자바둑 랭킹 1위 최정 6단을 비롯해 2위 김혜민 7단, 지난해 우승자 박지연 3단, 조혜연 9단, 박지은 9단 등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기사 33명이 총출동해 우승을 다툰다.
제21기 BnBK배 프로여류국수전이 22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한국기원 주관, 한국경제신문사 주최로 개막했다. 권성호 BnBK 대표(오른쪽부터)와 이학영 한국경제신문 이사,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 양건 프로기사회 회장(9단)이 국내 여자바둑 랭킹 1위 최정 6단(오른쪽)과 이정원 3단의 예선 첫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제21기 BnBK배 프로여류국수전이 22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한국기원 주관, 한국경제신문사 주최로 개막했다. 권성호 BnBK 대표(오른쪽부터)와 이학영 한국경제신문 이사,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 양건 프로기사회 회장(9단)이 국내 여자바둑 랭킹 1위 최정 6단(오른쪽)과 이정원 3단의 예선 첫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남자바둑보다 전투적”

1993년 창설된 프로여류국수전은 올해로 21회째를 맞은 한국 여자바둑의 대표 기전이다. 22일부터 이틀간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펼쳐지는 예선에는 한국기원 소속 여성 기사 33명이 출전해 12명의 본선 진출자를 가린다.

예선을 통과한 12명은 전기 대회 4강 자격으로 시드를 받아 본선에 직행한 작년 우승자 박지연 3단, 준우승자 김신영 초단, 오정아 2단, 이영주 초단 등과 함께 16강 토너먼트를 치러 결승 진출자 2명을 가린다. 이후 결승 3번기로 대망의 여류국수가 탄생한다.

여자바둑은 예상을 뒤엎는 승부가 끊임없이 벌어져 바둑팬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지난해에도 박 3단이 여자바둑 최강자인 최 6단을 8강에서 꺾었다. 김신영 초단 역시 8강에서 조혜연 9단의 500승 달성을 저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수졸(守拙·초단)이 입신(入神·9단)을 꺾은 것이다. 선수 간의 기량 차이가 크지 않아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것이 여자바둑의 매력이다.

조 9단은 “여자바둑은 정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남자바둑보다 훨씬 전투적이고 박진감 넘친다”며 “각자의 개성이 다양하고 변수가 많기 때문에 관전이 즐겁다”고 설명했다. 2003년 당시 여자바둑 세계 최강자였던 루이나이웨이 9단을 꺾고 여류국수에 오른 조 9단은 “초심으로 돌아가 올해에는 꼭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정 박지연 우승 후보

올해 여류명인전 5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최 6단은 여류국수전 우승이 아직 없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그는 “요즘은 여자바둑에도 강자가 워낙 많아 누가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다”며 “흥미진진한 경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 6단은 최근 화제가 된 알파고와의 대국에도 흥미를 보였다. 그는 “기회가 되면 알파고와 꼭 두고 싶다. 10번 대국에 한 번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며 “다른 스타일로 뒀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우승자 박 3단은 올해도 우승 후보다. 그는 17기에서 우승, 18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여류국수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날 예선 대국에는 오정아 2단, 김신영 초단, 우크라이나 출신의 마리야 자카르첸코 초단 등 미녀 기사들도 눈길을 끌었다. 단아한 외모로 인기가 많은 오 2단은 “골프도 여자가 남자보다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한국에선 여자투어의 인기가 더 많다. 요즘엔 예쁜 기사가 많아서 여자바둑이 관심을 받는 것 같은데 골프처럼 여자바둑의 인기가 커졌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한국기원이 주관하고 한국경제신문사 주최, BnBK 후원으로 열리는 프로여류국수전의 우승 상금은 1200만원. 제한시간은 3시간에 1분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권성호 BnBK 대표 "혼자만의 두뇌 싸움, 한 판에 인생 보여…바둑은 골프와 닮은꼴"

“골프와 바둑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혼자만의 정신 싸움이라는 점이 비슷하고 ‘골프 한 라운드, 바둑 한 판에 인생이 보인다’는 말도 있잖아요.”

골프장 토털 매니지먼트 서비스기업 BnBK의 권성호 대표(46)는 제21기 프로여류국수전을 후원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최근 이세돌-알파고 간 대국을 한 판도 빼놓지 않고 챙겨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며 “이번 기회에 바둑을 배워 애호가인 아버지와 한판 두고 싶다”고 말했다.

BnBK는 롯데스카이힐제주CC 등 국내 500여개 골프장의 코스 잔디와 식음료 및 대회 시설을 관리하고 운영인력을 지원하는 등 골프장 업무 전반을 대행하는 업체다. 권 대표는 “골프장이 많이 늘어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영의 효율성이 화두로 떠올랐다”며 “미국과 일본처럼 전문인력과 기술을 갖춘 업체에 운영관리를 맡기는 골프장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약 20%의 골프장이 아웃소싱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며 “소규모로 사업을 시작한 만큼 직원들이 서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250억원의 매출을 올린 BnBK는 최근 4년간 매년 10%의 꾸준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