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플라스틱(PB) 파이프 1위 업체 프럼파스트의 원재희 회장은 요즘도 가끔 공사 현장을 찾는다. 시공기사와 직접 대화하기 위해서다. 건설회사 사장이나 현장 소장보다 설치기사가 제품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원 회장은 “시공하는 사람이 불편해하는 점을 일일이 개선한 것이 1위가 된 비결”이라고 말했다.

프럼파스트는 내년 전략상품으로 파이프를 잇는 이음관을 개발하고 있다. 이 제품에도 “파이프끼리 제대로 연결됐는지 확인하면 불량률을 줄일 수 있다”는 현장 의견을 반영했다. 원 회장은 “기술은 사올 수 있지만 아이디어는 사올 수 없다”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보다 약간 개선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프럼파스트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원재희 프럼파스트 회장이 세종시 공장에서 플라스틱 배관 생산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원재희 프럼파스트 회장이 세종시 공장에서 플라스틱 배관 생산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무모한 세계시장 도전

원 회장은 1982년부터 10년간 파이프 대리점을 했다. 어느 날 영국 회사가 판매하는 가정용 배관 플라스틱 파이프를 알게 됐다. 이 회사의 재무제표를 구해 꼼꼼히 들여다봤다. 전기공학을 전공했지만 숫자에는 자신있었다. 며칠간 분석한 그는 훨씬 낮은 원가로 생산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회사를 차렸다. 1992년의 일이었다. 2년간 연구해 제품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내 건설사가 쓰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배관 파이프는 철로 제조한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원 회장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 몇 명을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기업명에 건축자재라고 쓰인 세계 회사 명단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직원들은 1만여개에 달하는 기업 리스트를 작성했다. 원 회장은 모든 회사에 상품 소개 우편을 발송했다. 시간이 지나자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해 50여건에 달했다. 이들과의 거래가 이어졌고, 새로운 납품처도 생겼다. 원 회장은 “무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수출로 시작한 회사여서 외환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때 한 해 5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환율이 급등하며 회사 이익도 크게 늘었다.

◆협업과 신뢰의 힘

원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1년 GS그룹 계열사와 50 대 50 합작으로 더 강한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를 차렸다. GS가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원 회장은 제조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 회장은 “다른 배관에 쓰이던 주철을 대체할 수 있는 플라스틱 원료를 제조하는 회사”라며 “원료 경쟁력 덕분에 지명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원 회장은 최근 GS가 보유하던 이 회사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지금도 그는 GS연구소 등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연구소들을 찾아다닌다. “문제가 생기면 대덕단지로 가 연구원을 직접 만나 조언을 듣고 실험을 부탁하기도 한다”고 했다. 협업이 프럼파스트의 또 다른 성장비결이라는 얘기다.

프럼파스트는 올해 국내시장에 기존 파이프와 함께 욕실에 설치된 여러 개의 수도꼭지로 수돗물을 분배해주는 분배박스 크기를 대폭 줄인 ‘점프-업 시스템’을 주력 제품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유럽시장에는 산업용 플라스틱 배관을 연결해주는 이음관(연결구) 등을 새롭게 내놓을 계획이다.

원 회장은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미국 업체와 손잡고 화장품사업에 진출할 예정”이라며 “중국공장을 통해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시장에도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