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의 아이폰 보안해제를 둘러싼 애플과 미국 법무부 간 날카로운 대립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일단락됐다. 일본계 기업이 미 연방수사국(FBI)이 포기한 아이폰 잠금장치를 뚫고 데이터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미 법무부는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의 연방지방법원에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아이폰 보안해제 협조 강제 요청을 취하했다고 2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에서 14명을 숨지게 한 파룩 부부의 총기테러 사건을 조사하는 데 필요한 파룩 소유의 아이폰 정보에 성공적으로 접근했다”며 “더 이상 애플의 협조가 필요없다”고 밝혔다.

미 사법당국은 ‘제3의 기관’에서 도움을 받았다고만 밝혔을 뿐 누가, 어떻게 잠금장치를 풀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이름이나 도움을 받은 경위는 공개하지 않았다. 미 언론들은 일본 전자업체 선(SUN)사가 2007년 인수한 셀리브라이트가 필요한 기술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1999년 이스라엘에서 설립된 셀리브라이트는 2007년 디지털 기기의 암호를 해독하고 삭제된 데이터를 복구하는 포렌식 사업부를 설립했고, 같은 해 선사에 인수된 이후 관련 사업을 확대해왔다. 일본 자위대를 포함해 세계 60여개국의 사법 및 군당국에 디지털 기기 암호해독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있다. 선사의 주가는 최근 5일간 40% 급등했다.

이번 사건으로 일본 기업이 확보한 기술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불거진 폭스바겐의 디젤엔진 배출가스 조작을 밝혀낸 검사 장비도 일본 호리바제작소가 제작했다.

일본 교토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일본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차량 배기가스 점검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의혹이 불거진 초기에 검사 장비의 오작동과 계측 오류를 주장했으나 조작을 시인하고 대규모 리콜과 손해배상을 결정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