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은 쿠바의 변화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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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물살 타는 미국·쿠바 관계정상화
북한도 핵포기, 개혁개방 택하면
국제사회 일원으로 번영하게 될것"
김태우 < 동국대 석좌교수·전 통일연구원장 >
북한도 핵포기, 개혁개방 택하면
국제사회 일원으로 번영하게 될것"
김태우 < 동국대 석좌교수·전 통일연구원장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20~22일 쿠바를 방문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2014년 말 양국이 수교에 합의했을 때 예견된 것이기는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래 88년 만에 재현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철천지원수로 지내던 두 나라의 관계정상화는 북한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145㎞밖에 떨어지지 않은 서인도제도의 섬나라다. 수도 아바나는 한때 낭만과 정열이 넘쳐나던 환상의 휴양지였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은 부패한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후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1961년 미국과의 외교가 단절됐고, 1962년 핵미사일 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봉쇄정책은 강도를 더해갔다. 공산독재가 절정을 이루면서 미국행을 원하는 쿠바 난민과 망명자가 속출했다. 오늘날 플로리다에만 100만명의 쿠바인이 살고 있다.
2006년 피델 카스트로가 장 출혈로 입원하면서 역사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권력을 넘겨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했다. 이후 토지이용 규제 완화, 농업 개혁, 정치범 석방, 해외여행 자유화, 시장 개방, 해외투자 유치 등 개혁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쿠바의 변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함에 따라 수교협상이 시작됐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의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오바마 대통령은 2박3일간 쿠바에 머물면서 라울과의 정상회담, 미국 메이저리그 팀과 쿠바 국가대표팀 간의 야구경기 관전, 반정부 인사들과의 만남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가 알리시아 알론소 국립극장에서 한 대중연설에서 “미주대륙에 남아 있는 냉전의 마지막 잔재를 파묻기 위해 왔다”고 선언할 때 TV 생중계를 지켜보던 쿠바 국민은 환호했다. 봉쇄정책의 종료와 금수조치 해제를 약속할 때는 더욱 크게 환호했다.
그동안 미국의 제재조치들은 가혹했다. 미국은 ‘적성국교역법’에 따라 1962년에 교역을 전면 금지했다. 여행 금지, 테러지원국 지정, 송금 규제, 쿠바 기항 선박의 미국 입항 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라울의 개혁과 함께 미국은 2009년부터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해 쿠바계 미국인의 쿠바 방문 허용, 송금 제한 해제, 미국 통신기업 쿠바진출 허용, 인도주의적 거래 허용 등 완화조치를 취해오던 중이었다. 양국이 관계정상화를 결정한 이상 이들 제재는 곧 전면 해제될 전망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미국은 쿠바의 인권개선과 민주화가 속도를 내기를 원한다. 쿠바는 관타나모 기지를 반환받기를 원하고 신속하게 경제제재가 해제되기를 기대한다. 인권 지적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고 있다. 쿠바가 개혁개방의 길을 택한 이상 이런 점들이 타결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쿠바가 개혁개방을 통해 대미(對美) 관계를 개선하고 있는 것은 북한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북한정권은 미국의 적대 정책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강변한다. 지난 29일에는 원산에서 북동쪽 내륙으로 단거리 발사체를 쏘는 등 위협수위를 높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북한도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국가로서 불안정을 야기하지 않는 국제사회 일원이 된다면 미국은 어떤 나라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북한도 지도자들이 생각을 바꾸면 핵무기를 내려놓고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설 수 있으며 주민들이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한국이 그랬듯이 북한도 경제기적을 이루면서 궁핍과 낙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김태우 < 동국대 석좌교수·전 통일연구원장 defensektw@hanmail.net >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145㎞밖에 떨어지지 않은 서인도제도의 섬나라다. 수도 아바나는 한때 낭만과 정열이 넘쳐나던 환상의 휴양지였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은 부패한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후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1961년 미국과의 외교가 단절됐고, 1962년 핵미사일 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봉쇄정책은 강도를 더해갔다. 공산독재가 절정을 이루면서 미국행을 원하는 쿠바 난민과 망명자가 속출했다. 오늘날 플로리다에만 100만명의 쿠바인이 살고 있다.
2006년 피델 카스트로가 장 출혈로 입원하면서 역사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권력을 넘겨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했다. 이후 토지이용 규제 완화, 농업 개혁, 정치범 석방, 해외여행 자유화, 시장 개방, 해외투자 유치 등 개혁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쿠바의 변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함에 따라 수교협상이 시작됐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의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오바마 대통령은 2박3일간 쿠바에 머물면서 라울과의 정상회담, 미국 메이저리그 팀과 쿠바 국가대표팀 간의 야구경기 관전, 반정부 인사들과의 만남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가 알리시아 알론소 국립극장에서 한 대중연설에서 “미주대륙에 남아 있는 냉전의 마지막 잔재를 파묻기 위해 왔다”고 선언할 때 TV 생중계를 지켜보던 쿠바 국민은 환호했다. 봉쇄정책의 종료와 금수조치 해제를 약속할 때는 더욱 크게 환호했다.
그동안 미국의 제재조치들은 가혹했다. 미국은 ‘적성국교역법’에 따라 1962년에 교역을 전면 금지했다. 여행 금지, 테러지원국 지정, 송금 규제, 쿠바 기항 선박의 미국 입항 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라울의 개혁과 함께 미국은 2009년부터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해 쿠바계 미국인의 쿠바 방문 허용, 송금 제한 해제, 미국 통신기업 쿠바진출 허용, 인도주의적 거래 허용 등 완화조치를 취해오던 중이었다. 양국이 관계정상화를 결정한 이상 이들 제재는 곧 전면 해제될 전망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미국은 쿠바의 인권개선과 민주화가 속도를 내기를 원한다. 쿠바는 관타나모 기지를 반환받기를 원하고 신속하게 경제제재가 해제되기를 기대한다. 인권 지적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고 있다. 쿠바가 개혁개방의 길을 택한 이상 이런 점들이 타결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쿠바가 개혁개방을 통해 대미(對美) 관계를 개선하고 있는 것은 북한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북한정권은 미국의 적대 정책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강변한다. 지난 29일에는 원산에서 북동쪽 내륙으로 단거리 발사체를 쏘는 등 위협수위를 높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북한도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국가로서 불안정을 야기하지 않는 국제사회 일원이 된다면 미국은 어떤 나라도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북한도 지도자들이 생각을 바꾸면 핵무기를 내려놓고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설 수 있으며 주민들이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한국이 그랬듯이 북한도 경제기적을 이루면서 궁핍과 낙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김태우 < 동국대 석좌교수·전 통일연구원장 defensektw@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