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대규모 양적 완화에 나선 지 4일로 3년이 지났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는 2013년 초 디플레이션 탈피를 목표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성장전략 등 ‘세 가지 화살’을 쏘아 올렸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금융완화 차원에서 지난 3년간 220조엔(약 2250조원) 규모의 돈을 풀고, 지난 1월 말엔 마이너스 금리 정책 도입을 전격 결정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엔화가치가 반등하면서 일본 기업 실적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엔저와 기업 실적 개선을 통한 소비 및 투자 증가로 경기회복을 이끌려는 아베노믹스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컨트리 리포트] 220조엔 풀고도 못 웃는 일본…엔고에 기업들마저 '휘청'
○약발 다한 양적 완화(?)

일본은행은 2013년 4월4일 연간 60조~70조엔 규모의 양적 완화 단행을 결정했다. 이듬해 하반기 들어 엔저 추세가 주춤하자 10월 말에는 양적 완화 규모를 연간 80조엔까지 확대했다. 그 결과 2013년 3월 말 146조엔이던 일본 본원통화는 지난 2월 말 358조800억엔까지 불어났다. 일본은행의 연간 양적 완화 규모를 감안하면 3월 말에는 366조엔 정도로 불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3년간 양적 완화 규모는 220조엔에 이른다.

엔화가치는 양적 완화 직전 달러당 94엔대에서 지난해 7월엔 124엔대로 30% 이상 떨어졌다. 엔저에 따른 수출 채산성 향상으로 기업 실적 개선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닛케이225지수도 지난해 6월엔 18년 만에 최고치(20,868.03)를 경신했다. 하지만 작년 말 이후 중국 경기둔화와 국제 유가 급락이 이어지면서 일본 양적 완화는 약발을 다하는 모습이다.

지난 1월 말 일본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깜짝 도입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지만 기대한 ‘구로다의 매직’은 나타나지 않았다. 엔화가치는 작년 말 120엔대에서 지난 주말 112엔대로 올라왔고, 닛케이지수는 연말보다 15% 하락했다. 미국 다우지수가 2% 이상 상승한 것과 대조된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마이너스 금리 도입 효과가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에 찬물을 끼얹은 ‘악수(惡手)’였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되살아나는 디플레이션 공포

일본은행이 양적 완화 명분으로 내세운 ‘소비자물가 2% 달성’ 시기도 점점 늦어지고 있다. 2013년 4월만 해도 ‘2년 정도에 2% 달성’을 자신했지만 3년째인 2015회계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 소비자물가는 0.8% 상승에 그친 것으로 일본은행은 추산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2016회계연도와 2017회계연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각각 0.8%, 1.8%(소비세율 인상분 제외)로 보고 있다.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를 북돋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는 구상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가뿐만이 아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도 아베 총리가 목표로 하는 2%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4분기 일본 GDP는 전분기 대비 0.3% 감소해 두 분기 만에 또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2015회계연도 전체로도 0.7%(시장 추정치 평균) 성장에 머물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달 일본은행과 일본 정부까지 나란히 경기 판단을 하향 조정하며 ‘백기’를 들었다. 일본 정부는 최근 경기 둔화가 심각하다고 보고 5월26~27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전에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믿었던 기업 실적마저 주춤

엔화 강세 반전으로 기업 실적 개선마저 주춤하면서 4년차를 맞는 아베노믹스가 좌초할 수 있을 것이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일본 토픽스지수 소속 기업 중 증권사 실적 추정치가 있는 918개사의 2015회계연도 순이익 추정치는 전년 대비 5.1% 증가한 28조8200억엔으로 낮아졌다. 6개월 전인 작년 10월 말만 해도 이들 기업 순이익 전망치는 전년 대비 19.3% 증가한 32조7100억엔이었다.

2016회계연도 순이익 전망치도 작년 10월 말 대비 5.8% 하향 조정됐다. 엔화 강세 반전 탓이다. 주요 투자은행(IB)의 엔화 환율전망치(평균)는 연말 달러당 113엔으로, 지난해 평균인 120.5엔보다 7엔가량 낮다. 엔화가치 1엔 상승은 기업의 이익증가율을 0.5%포인트 떨어뜨리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 기업을 대표하는 도요타는 엔화가치가 1엔 상승하면 영업이익이 400억엔 감소하는 구조다.

이런 영향에 지난 1일 발표된 3월 대기업 제조업 업황판단지수는 6으로, 3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8)까지 크게 밑돌면서 기업들의 체감 경기 악화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환경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지난달 주요 기업 기본급 인상폭도 3년 만에 최저로 떨어질 전망이다. 아베 총리 집권 후 이어져 온 엔화약세→기업 실적 호전→소비·투자 증가→경기회복 구도가 삐걱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은행이 이달 27~28일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추가 양적 완화 카드를 빼들지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