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 인수 가격으로 1조원 초반대를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KB금융지주가 거래 종결 때까지 깎을 수 있는 금액이 약 1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치열한 인수 경쟁으로 매각자인 현대그룹이 거래의 주도권을 쥐면서 가격조정한도가 이례적으로 낮게 책정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KB금융지주는 거래 종결 이후 쟁점이 될 2조7000억원 규모의 우발채무에 대해 실사 과정에서 면밀히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이례적으로 낮은 가격조정한도

KB금융, 현대증권 인수가 최대 100억밖에 못깎는다
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KB금융지주는 최근 실시한 현대증권 본입찰에서 현대그룹이 제시한 ‘가격조정한도 1%안’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조정한도란 인수자가 본입찰 때 적어낸 인수가에서 얼마만큼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지 미리 정해놓는 것을 말한다. 통상적인 기업 인수합병(M&A) 거래에서는 3~5% 수준으로 설정된다.

실제 올초 진행된 미래에셋증권의 대우증권 인수에서 가격조정한도는 3%였다. 미래에셋증권은 최초 입찰가 2조3853억원에서 약 2.7%를 깎아 2조3205억원에 최종 인수가격을 결정했다. 2014년 NH농협금융지주의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인수에서도 NH농협 측은 약 2%를 깎아 1조385억원에 인수가격을 확정했다.

현대증권 매각에서 가격조정한도가 이례적으로 낮게 설정된 건 매각 측인 현대상선의 특수 상황과 무관치 않다. 현대상선은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아래 있어 현대증권 매각 대금이 시급한 상황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가격조정한도를 줄이면 그만큼 협상 기간이 줄어 거래를 빨리 마감할 수 있다”며 “현대그룹이 우선협상자 선정 막판까지 KB금융과 한국투자증권에 가격조정한도를 줄이라고 요구하며 사실상 ‘프로그레시브 딜(경매호가 방식의 입찰)’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KB금융, 현대증권 인수가 최대 100억밖에 못깎는다
○2조7000억원 우발채무가 관건

가격조정한도 폭이 적은 만큼 KB금융지주는 본실사 과정에서 추후 손해배상과 관련한 항목들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가장 중요한 이슈는 2조7000억원 규모의 현대증권 우발채무다. 현대증권 별도재무제표에 따르면 이 증권사의 지난해 말 우발채무는 2조7307억원(신용위험 노출 기준)이다. 2013년 말 1조1913억원, 2014년 말 2조463억원 등 매년 7000억~8000억원씩 늘어났다. 우발채무는 현재는 채무로 잡혀 있지 않지만 돌발사태가 발생하면 채무로 확정될 가능성이 있는 각종 확약 등을 말한다.

현대증권의 우발채무 중 83%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관련돼 있다. 현대증권은 건설사가 짓고 있는 아파트 등에 미분양이 발생하면 미분양 물량을 담보로 대출해주거나 미분양 물량을 일정 규모까지 매입해주기로 확약했다. 미분양이 생기지 않으면 신용 보강 대가로 수수료를 받지만 반대의 경우 이 확약들이 우발채무로 바뀐다.

다만 우발채무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KB금융지주가 충분한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업계에서는 KB금융지주가 가격조정한도뿐 아니라 손해배상한도 역시 통상적인 M&A 거래보다 낮게 설정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태호/임도원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