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일본 생산·소비·수출 불안…'잃어버린 30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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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 돈풀기 '한계 상황'
전형적인 '복합불황' 진입 국면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전형적인 '복합불황' 진입 국면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일본 경제가 심상치 않다. 생산, 소비, 수출 지표 모두가 불안하다. 닛케이지수는 급락하고 있지만 엔화 가치는 강세로 돌아섰다. 정책적으로는 울트라 금융완화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궁여지책 속에 재정정책을 마지막으로 동원하고 있다. 전형적인 복합불황의 단면이다.
1990년 이후 일본 경제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디플레이션 국면을 언제 탈피할 것인가였다. 일본 경제성장률이 1980년대 연평균 4.7%에서 1990년대 이후 1.1%로 급락한 것이 내수 부진에서 주로 비롯된 것처럼 디플레이션 우려도 내수 부진 요인이 가장 큰 것으로 지적돼왔다.
거듭된 정책 실수도 침체기간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990년 이후 무려 스물다섯 차례 넘게 시행된 경기부양책은 재정여건만 악화시켰다. 일본 국채의 95%를 갖고 있는 일본 국민이 국가 부도 시 겪을 ‘낙인 효과’를 우려해 일본 정부가 ‘최종 대부자’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디폴트에는 몰리지 않았으나 국가채무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정책금리도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렸으나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유동성 함정에 빠진 지 오래됐다. 각종 명목으로 구조조정 정책 시행을 25년 넘게 외쳐왔지만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책과 국민 간 불신의 악순환 고리만 키워왔다.
일본 경제는 내수부문 활력을 되찾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고용과 임금 불안정, 고령화 지속 등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 때문이다. 재정여건도 크게 악화돼 1990년대처럼 정부가 민간 수요를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내수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여건 이상으로 강세를 보이는 엔화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야 한다. 하지만 1990년 전후 ‘대장성 패러다임’과 ‘미에노 패러다임’ 간 논란이 거세졌다. 전자는 ‘엔저(低)와 수출’로 상징되나 후자는 ‘물가안정과 중앙은행 독립성’으로 대변된다.
현 집권당인 자민당은 일본 경제가 1990년 이후 장기침체된 가장 큰 요인으로 당시 일본은행 총재인 미에노 야스시가 고집스럽게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비타협적 통화정책을 펼친 점을 꼽았다. 이 때문에 아베 신조가 2012년 12월 자민당 총리로 재집권하자마자 엔저를 통해 성장을 지향하는 구로다 하루히코 현 일본은행 총재를 영입해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아베노믹스를 추진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당초 의도대로 효과를 거두기보다 국제금융시장 참가자인 각국에 갈등 분위기만 조성해왔다. 인위적인 자국통화 평가절하를 통한 경기부양은 인접국 혹은 경쟁국에 고스란히 피해를 주는 ‘근린궁핍화 정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다. 가장 타격이 심한 경제주체는 수입업체다. 대책을 강구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유도된 엔저로 채산성이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도 수입물가 급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한계치를 넘어섰다. 올해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를 벼르고 있을 정도다.
가장 반겨야 할 수출업계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기간 지속된 엔고(高)에 대응하기 위해 수출업체가 해외로 진출해 ‘기업 내 무역’이 보편화됐다. 수출결제통화는 한때 80%를 웃돌던 달러 비중을 40% 내외로 낮춰 놓았기 때문에 엔저가 되더라도 채산성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2월 마이너스 금리제도 도입 이후 엔화 가치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안전통화 저주’에 대한 우려가 재현되고 있다. 안전통화 저주란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처음 주장한 용어로, 경기침체 속에 엔화가 오히려 강세가 돼 가뜩이나 어려운 일본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엔저로 상징되는 아베노믹스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안전통화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선 ‘제2의 역(逆)플라자 합의’가 나와야하지 않느냐는 시각이 급부상하고 있다. 역플라자 합의란 1995년 4월 엔·달러 환율 80엔 선이 무너지자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선진국 7개국 간 맺었던 ‘달러 강세-엔 약세’를 도모하기 위한 협약이다.
미국의 태도가 관건이다. 불행히도 미국은 달러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 약세를 유도하거나 최소한 방치해야 한다. ‘제2의 플라자 합의’라고 불리는 ‘상하이 밀약설(달러 약세를 유도하자는 묵시적 합의)’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근거다.
아베노믹스는 이제 일본 안팎에서 반기는 곳이 없다. ‘잃어버린 30년’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1990년 이후 일본 경제가 당면한 최대 과제는 디플레이션 국면을 언제 탈피할 것인가였다. 일본 경제성장률이 1980년대 연평균 4.7%에서 1990년대 이후 1.1%로 급락한 것이 내수 부진에서 주로 비롯된 것처럼 디플레이션 우려도 내수 부진 요인이 가장 큰 것으로 지적돼왔다.
거듭된 정책 실수도 침체기간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990년 이후 무려 스물다섯 차례 넘게 시행된 경기부양책은 재정여건만 악화시켰다. 일본 국채의 95%를 갖고 있는 일본 국민이 국가 부도 시 겪을 ‘낙인 효과’를 우려해 일본 정부가 ‘최종 대부자’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디폴트에는 몰리지 않았으나 국가채무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정책금리도 ‘마이너스 수준’까지 내렸으나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유동성 함정에 빠진 지 오래됐다. 각종 명목으로 구조조정 정책 시행을 25년 넘게 외쳐왔지만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책과 국민 간 불신의 악순환 고리만 키워왔다.
일본 경제는 내수부문 활력을 되찾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고용과 임금 불안정, 고령화 지속 등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 때문이다. 재정여건도 크게 악화돼 1990년대처럼 정부가 민간 수요를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내수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여건 이상으로 강세를 보이는 엔화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야 한다. 하지만 1990년 전후 ‘대장성 패러다임’과 ‘미에노 패러다임’ 간 논란이 거세졌다. 전자는 ‘엔저(低)와 수출’로 상징되나 후자는 ‘물가안정과 중앙은행 독립성’으로 대변된다.
현 집권당인 자민당은 일본 경제가 1990년 이후 장기침체된 가장 큰 요인으로 당시 일본은행 총재인 미에노 야스시가 고집스럽게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비타협적 통화정책을 펼친 점을 꼽았다. 이 때문에 아베 신조가 2012년 12월 자민당 총리로 재집권하자마자 엔저를 통해 성장을 지향하는 구로다 하루히코 현 일본은행 총재를 영입해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아베노믹스를 추진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당초 의도대로 효과를 거두기보다 국제금융시장 참가자인 각국에 갈등 분위기만 조성해왔다. 인위적인 자국통화 평가절하를 통한 경기부양은 인접국 혹은 경쟁국에 고스란히 피해를 주는 ‘근린궁핍화 정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다. 가장 타격이 심한 경제주체는 수입업체다. 대책을 강구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유도된 엔저로 채산성이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도 수입물가 급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한계치를 넘어섰다. 올해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를 벼르고 있을 정도다.
가장 반겨야 할 수출업계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기간 지속된 엔고(高)에 대응하기 위해 수출업체가 해외로 진출해 ‘기업 내 무역’이 보편화됐다. 수출결제통화는 한때 80%를 웃돌던 달러 비중을 40% 내외로 낮춰 놓았기 때문에 엔저가 되더라도 채산성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2월 마이너스 금리제도 도입 이후 엔화 가치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안전통화 저주’에 대한 우려가 재현되고 있다. 안전통화 저주란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처음 주장한 용어로, 경기침체 속에 엔화가 오히려 강세가 돼 가뜩이나 어려운 일본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엔저로 상징되는 아베노믹스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안전통화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선 ‘제2의 역(逆)플라자 합의’가 나와야하지 않느냐는 시각이 급부상하고 있다. 역플라자 합의란 1995년 4월 엔·달러 환율 80엔 선이 무너지자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선진국 7개국 간 맺었던 ‘달러 강세-엔 약세’를 도모하기 위한 협약이다.
미국의 태도가 관건이다. 불행히도 미국은 달러화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취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 약세를 유도하거나 최소한 방치해야 한다. ‘제2의 플라자 합의’라고 불리는 ‘상하이 밀약설(달러 약세를 유도하자는 묵시적 합의)’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근거다.
아베노믹스는 이제 일본 안팎에서 반기는 곳이 없다. ‘잃어버린 30년’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