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 모인 101명의 연습생. 연합뉴스
걸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 모인 101명의 연습생. 연합뉴스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픽미 픽미 픽미업(pick me pick me pick me up).”

101명의 소녀가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춤추며 노래한다. 하지만 이들 중 걸그룹으로 데뷔할 수 있는 사람은 단 11명. 여기에 들기 위해 101명의 소녀는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노래가 끝나면 사회자가 외친다.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

진화하는 아이돌…혁신의 상징인가, 무한경쟁의 표본인가
지난 1월 시작한 케이블 방송 Mnet의 ‘프로듀스 101’이다. 아이돌 데뷔를 위해 46개 기획사의 연습생 101명이 몰렸다. 이달 1일 시청자 투표로 ‘아이오아이(I.O.I)’의 멤버 11명이 최종 선정됐다. 연습생의 열정만큼 대중의 관심도 뜨거웠다. 최종 멤버가 발표되자 소속사 주가는 급등하기도 했다.

‘아이돌 4.0’ 시대가 열렸다. 탄생부터 팬덤이 형성되는 과정까지 모두 이전과 다르다. 한류 열풍을 타고 상품가치가 더욱 높아지면서 아이돌이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아이돌 그룹은 1990년대 데뷔한 H.O.T.와 젝스키스로부터 시작된다. 여러 명이 그룹을 형성해 오랜 시간 연습을 거쳐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여학생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성장했다. 이후 2000년대부터 아이돌이 쏟아져나왔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이다. ‘아이돌 2.0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지(Gee)’ ‘노바디(Nobody)’ 등 후크송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2010년 이후 등장한 ‘3.0세대’인 엑소 등은 애초 세계 무대를 타깃으로 탄생했다. 중국, 일본 등을 공략하기 위해 외국인 멤버도 적극 영입했다.

이제 시작된 4.0시대의 아이돌은 개방형으로 운영된다. 오디션부터 공개적이다. 그룹이 형성되기 전부터 대중에 노출되기 때문에 넓은 팬덤을 확보하게 된다. ‘멤버 수’란 개념조차 사라지고 있다. 올 1월 SM엔터테인먼트는 멤버 영입이 자유롭고, 숫자 제한조차 없는 새로운 형태의 그룹 NCT를 소개했다.

하지만 진화가 거듭될수록 아이돌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한류 열풍을 이끌 주역인 동시에 경쟁과 자극 사회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아이돌은 하나의 ‘인간자본(human capital)’에 해당한다. 자신을 하나의 자본으로 판단해 이윤 창출을 위해 더 큰 모험과 투자를 감행한다. 특히 빠른 속도로 파급력이 커지는 아이돌은 ‘성장하는 인간자본’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한류 열풍 확산을 위해 아이돌의 상품가치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개방형으로 확장되는 만큼 지나친 경쟁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프로듀스 101’에서 101명의 순위를 매기고 전부 공개하자 극단적인 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걸그룹 멤버의 성 상품화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과거 S.E.S. 등 아이돌 1세대 여성 멤버는 순수한 이미지를 강조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근엔 자극적인 의상과 안무 등으로 승부하려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걸그룹이 섹슈얼리티(성적 욕망)의 상징으로 꼽힐 정도다.

아이돌의 어원은 이미지나 형상을 뜻하는 라틴어 ‘이돌룸(idolum)’에서 왔다. 주로 종교적 우상을 말하며 아이돌이 신처럼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현실에 없을 것만 같은, 그래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존재인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고, 안무를 따라 하고 싶어진다면 그것으로 이들의 역할은 끝났다. 하지만 대중과 소속사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류 주역이란 타이틀을 앞세워 아이돌을 지나친 경쟁과 자극의 세계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