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차례 해무 새벽 시운전…"밤낮 바뀌어도 책임과 보람"
작년 12만㎞ 무사고 기록…2020년 부산~마산 구간 투입
코레일 부산고속기관차승무사업소 소속 이경식 기장(56·사진)은 국내에서 가장 빠른 차세대 고속열차 해무를 모는 테스트 기관사다. 자동차 회사로 따지면 신차를 시험하는 테스트드라이버인 셈이다. 해무의 공식 최고 속도는 시속 430㎞로 현재 경부선과 호남선에서 운행하는 KTX보다 130㎞ 빠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30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속도다. 지금까지 기록한 최고 시속은 421.4㎞. 국내 육상 교통수단 중 가장 빠른 기록이다.
이 기장은 지난 6일 대전과 광명 사이에서 진행된 해무의 올해 두 번째 시범운행을 맡았다. 이날 최고 속도를 내지 않았지만 운행을 시작한 지 10여분 만에 시속 300㎞를 넘어섰고 최고 시속 303㎞로 대전에서 광명까지 달렸다. 올해로 운행 경력 36년차인 이 기장은 2014년 6월 전임 장남식 기장의 뒤를 이어 해무 운행을 맡고 있다. 그는 2014년 운행기록 200만㎞를 돌파한 기록의 보유자다.
이 기장은 해무 기장에 지원한 동기를 묻자 “차세대 고속열차 기장 지원자를 뽑는데 손을 든 사람이 거의 없었다”며 “비둘기호와 화물열차, KTX를 몰아본 경험으로 국산 차세대 고속열차를 가장 먼저 몰아보고 개발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70차례가 넘는 시운전에 참여했다. 이 중 20차례 정도 시속 400㎞ 이상 속도를 냈다. “300㎞로 달리는 KTX 운전석에 처음 올랐을 때 많이 긴장했어요. 이전에는 100㎞대로 달렸거든요. KTX보다 훨씬 빠른 해무 운전석에 올랐을 때도 정말 많이 긴장했습니다. 지금은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편합니다.”
별다른 시험 선로가 없다 보니 해무 시운전은 주로 KTX 운행이 끝나는 오전 1~4시에 이뤄졌다. 부산 차량 기지에서 오송을 거쳐 공주와 익산 사이를 하루 네다섯 차례 오가며 성능을 시험했다. 총 6량으로 구성된 해무가 정지 상태에서 400㎞까지 속도를 올리려면 5~6분이 걸린다. 선로도 최소 10㎞ 이상 확보해야 한다. 제동에도 4~5㎞가 필요하다. 이 기장은 “시운전이 대부분 밤에 진행되다 보니 많이 긴장하고 밤낮이 바뀌어 힘든 부분도 많았다”면서도 “함께 열차를 타고 밤샘 연구를 한 연구원들을 보면서 책임감과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그와 연구자들의 노력 덕에 해무는 지난해 말 12만㎞ 주행시험을 사고 없이 안전하게 마쳤다. 일반인이 해무를 타려면 적어도 4~5년은 기다려야 한다. 2012년 개발이 끝났지만 아직 도입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레일과 개발사인 현대로템은 2020년 개통 예정인 경전선 부산 부전역~마산 복선전철 구간에 해무를 투입하기 위해 입찰을 벌이고 있다. 그는 “해무는 시속 350~370㎞ 속도에서 탁월한 안정감을 보인다”며 “해무가 상용화될 때까지 테스트 기관사로서 운전석에 앉고 싶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