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 우발채무 규모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우발채무는 당장 빚은 아니지만 미래의 일정한 조건에선 빚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 불확정 채무를 뜻한다.
증권사 '숨은 빚' 갑론을박
12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지난해 말 기준 우발채무 규모는 약 24조원에 달했다. 2011년에 비해 세 배 이상 증가한 액수다. 일부 증권사가 고수익을 노리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대출 보증을 크게 늘려서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 비중이 작년 말 기준 270%로 가장 높다. 이어 하이투자증권(170%) 교보증권(190%) HMC투자증권(140%) IBK투자증권(118%) 순이다. NH투자증권(98%)과 현대증권(83%)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증권사 우발채무가 부동산 관련 대출에 쏠려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89%) 현대증권(84%) 하이투자증권(78%) HMC투자증권(77%)은 부동산 관련 우발채무 비중이 높았다. 안나영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올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거나 분양률이 떨어지면 대규모 우발채무가 현실화돼 자금 유동성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발채무 중에서도 위험성이 큰 신용공여 비중이 점차 늘고 있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메리츠종금증권 HMC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3개사는 신용공여형 비중이 80%가 넘는다. 증권사는 시행사가 아파트 착공 전 PF 대출을 받은 뒤 분양대금으로 상환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받고 보증을 서주고 있다.

초기엔 PF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같은 유동화증권의 차환 발행에 대해 보증을 해주는 매입보장약정(유동성공여)을 주로 했지만, 건설사들의 보증 능력이 떨어지면서 증권사가 직접 PF 대출을 보증하는 신용공여를 점차 늘렸다.

안지은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신용공여 비중이 높으면 부동산 경기 하락 시 손실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혁준 NICE신용평가 금융평가1실장은 “거래 상대방의 부실 위험도 높다”며 “HMC투자증권은 거래 상대방의 신용등급이 없거나 BBB 이하인 우발채무가 50%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증권업계에선 과도한 우려가 되레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백득균 메리츠종금증권 심사분석1팀장은 “메리츠종금증권 우발채무의 42%가 미분양 물건을 담보로 한 대출 확약으로 비교적 안전한 데다 우선 변제권이 있는 선순위 채권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우발채무의 양적 규제를 강조하다 보면 PF 대출 시장이 위축되고 오히려 자기자본 규제를 덜 받는 고위험 후순위 채권 투자를 조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의 진단도 신용평가사와 온도차가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난해 말 기준 증권사 우발채무 가운데 채무보증 이행으로 이어진 것은 전체의 2~3%에 불과하다”며 “우발채무가 전부 보증 이행으로 전가되는 게 아닌데도 신평사들이 채무 규모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