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가 꺼낸 일본·EU '불황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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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이 소비자에게 직접 돈 풀어야 경기 회복"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지만 대출·투자 안늘어 찬성론 확산
한번 시중에 풀면 회수 어려워 실제 도입에는 진통 예상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지만 대출·투자 안늘어 찬성론 확산
한번 시중에 풀면 회수 어려워 실제 도입에는 진통 예상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을 민간 소비자에게 직접 공급해야 한다는 ‘헬리콥터 머니’가 새로운 통화정책 수단으로 힘을 얻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QE)에 이어 최근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처럼 초(超)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반대 측 주장과 함께 논쟁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버냉키 “헬리콥터 머니, 좋은 대안”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만성적인 수요 부족에도 통화정책이 말을 듣지 않고, 정치권의 반대로 재정정책도 쓰기 힘들 때 헬리콥터 머니는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2년에도 헬리콥터 머니를 옹호하며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이 붙은 그는 “미국이 가까운 미래에 헬리콥터 머니를 도입할 가능성은 낮지만, 이를 정책 대안 중에서 완전히 배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헬리콥터 머니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유명인은 버냉키만이 아니다. 아데어 터너 전 영국 금융감독청장은 “각국 정부는 더 이상 빚을 내 재정정책을 쓰기 어렵다”며 “국채 발행 대신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는 헬리콥터 머니는 현재 가장 적절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는 “양적 완화로 중앙은행이 막대한 양의 통화를 금융권에 투입했지만 은행대출과 기업투자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며 “소비를 직접 일으키는 헬리콥터 머니를 결국 중앙은행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도이치뱅크 “일본, 도입 가능성 높다”
1969년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하늘에서 1000달러어치 지폐를 뿌리는 상황을 가정하며 처음 쓴 헬리콥터 머니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전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중앙은행이 새로 발행한 돈으로 국채를 직접 매입하거나, 정부 계좌로 돈을 넣어주는 방법이 있다. 이 돈으로 정부는 인프라 투자 등 성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지출을 늘릴 수 있다.
양적 완화도 중앙은행 발권력으로 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같지만 정부로부터 직접 매입하지 못하고 민간 보유 채권만 살 수 있다. 정부가 중앙은행의 돈을 마음대로 끌어다 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돈 사용처가 민간의 판단에만 달려 있어 정부 의도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도이치뱅크는 헬리콥터 머니를 도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일본을 꼽았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는 연 2%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일본 물가상승률은 올 1월 0%, 2월 0.3%에 그쳐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가 높다. 일본은 지난 2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지만 엔화 가치 하락과 대출 증가 등 의도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2월과 3월 각각 -0.2%와 0%의 물가상승률을 보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도 헬리콥터 머니 도입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실제 도입에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통화발행을 절제하지 못하면 초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헬리콥터 머니는 한번 시중에 푼 본원통화를 회수하기 힘든 것도 문제다. 유럽중앙은행(ECB)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달 헬리콥터 머니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라고 관심을 보였지만 빅토 콘스탄치오 ECB 부총재는 “전혀 검토 대상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 헬리콥터 머니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새로 찍어낸 돈을 시중에 공급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 전 국민에게 얼마씩 나눠주거나 중앙은행이 정부에 직접 돈을 줘 재정정책에 쓰도록 할 수 있다. 1969년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처음 비유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버냉키 “헬리콥터 머니, 좋은 대안”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만성적인 수요 부족에도 통화정책이 말을 듣지 않고, 정치권의 반대로 재정정책도 쓰기 힘들 때 헬리콥터 머니는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2년에도 헬리콥터 머니를 옹호하며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이 붙은 그는 “미국이 가까운 미래에 헬리콥터 머니를 도입할 가능성은 낮지만, 이를 정책 대안 중에서 완전히 배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헬리콥터 머니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유명인은 버냉키만이 아니다. 아데어 터너 전 영국 금융감독청장은 “각국 정부는 더 이상 빚을 내 재정정책을 쓰기 어렵다”며 “국채 발행 대신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는 헬리콥터 머니는 현재 가장 적절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는 “양적 완화로 중앙은행이 막대한 양의 통화를 금융권에 투입했지만 은행대출과 기업투자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며 “소비를 직접 일으키는 헬리콥터 머니를 결국 중앙은행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도이치뱅크 “일본, 도입 가능성 높다”
1969년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하늘에서 1000달러어치 지폐를 뿌리는 상황을 가정하며 처음 쓴 헬리콥터 머니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전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중앙은행이 새로 발행한 돈으로 국채를 직접 매입하거나, 정부 계좌로 돈을 넣어주는 방법이 있다. 이 돈으로 정부는 인프라 투자 등 성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지출을 늘릴 수 있다.
양적 완화도 중앙은행 발권력으로 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같지만 정부로부터 직접 매입하지 못하고 민간 보유 채권만 살 수 있다. 정부가 중앙은행의 돈을 마음대로 끌어다 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돈 사용처가 민간의 판단에만 달려 있어 정부 의도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도이치뱅크는 헬리콥터 머니를 도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일본을 꼽았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는 연 2%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일본 물가상승률은 올 1월 0%, 2월 0.3%에 그쳐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가 높다. 일본은 지난 2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지만 엔화 가치 하락과 대출 증가 등 의도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2월과 3월 각각 -0.2%와 0%의 물가상승률을 보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도 헬리콥터 머니 도입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실제 도입에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통화발행을 절제하지 못하면 초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헬리콥터 머니는 한번 시중에 푼 본원통화를 회수하기 힘든 것도 문제다. 유럽중앙은행(ECB)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달 헬리콥터 머니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라고 관심을 보였지만 빅토 콘스탄치오 ECB 부총재는 “전혀 검토 대상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 헬리콥터 머니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새로 찍어낸 돈을 시중에 공급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 전 국민에게 얼마씩 나눠주거나 중앙은행이 정부에 직접 돈을 줘 재정정책에 쓰도록 할 수 있다. 1969년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처음 비유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