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은 국내에서도 가장 오래된 IT기업이다. 1967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이 인구 센서스를 위해 국내 최초의 컴퓨터 ‘IBM1401’을 도입한 것을 계기로 한국에 진출했다. 이후 한국IBM은 국내 IT업계의 ‘인재 사관학교’ 역할을 해 왔다.
그런 IBM이 요즘 휘청이고 있다. 미국 본사를 포함한 IBM의 글로벌 매출은 15분기 연속 감소했고, 한국IBM의 지난해 매출은 1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IT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이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IBM은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의 부상으로 소프트웨어나 메인 프레임 컴퓨터 같은 자사의 주력 사업이 타격을 받게 되자 클라우드 시장으로 눈을 돌렸으나 이미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 선점당해 고전하고 있다.
IBM처럼 기존 주력 사업에 집착하다 때를 놓쳐 위기를 겪는 사례는 기업 흥망사에서 데자뷔처럼 반복되고 있다. ‘게임 왕국’ 닌텐도는 모바일 시장을 우습게 봤다가 6년 만에 매출 70%를 까먹었다. 노키아 모토로라 샤프 등도 스마트폰 시장과 디지털 전환에 미적거리다가 모두 다른 기업에 팔렸고, 블랙베리 역시 스마트폰 운영체제(OS) 경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몰려 있다.
기업이 시장 흐름에서 ‘타이밍’을 놓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기존 것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성공한 기업들은 객관성을 잃고, 자신의 판단과 시장의 희망을 동일시하는 자만에 빠지기 쉽다. 이 점을 딱 꼬집어 낸 사람이 세계적인 마케팅 전략가 알 리스다.
그는 마케터들에게 교과서로 통하는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서 마케팅의 세계에서 최고의 제품이란 없으며 소비자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인식’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했다. 일류 기업일수록 자기 회사 제품이 최고이며, 결국 최고의 제품이 승리할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되는데 이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제품’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소비자 마음속에 존재하는 심리적 실재이기 때문이다. 한 번 마음이 떠나간 소비자에게 아무리 제품의 우수성을 강조해도 되돌리기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주말 한국에 온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은 “기업 입장에서 가장 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은 과거에 배운 것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에서 괴짜 경영인으로 통하는 다이소 창업자 야노 히로타케 회장의 말에 힌트가 있어 보인다. “21세기에는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는 게 없다. 판매자가 머리를 굴려 계획을 짜고 예상을 해도 그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오직 손님의 눈치를 보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할 뿐이다.”
윤성민 IT과학부장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