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석·박사들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1000억원 규모의 엔젤투자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인공지능(AI) 등 융복합형 신(新)산업 육성을 위해 미리부터 씨앗을 뿌려놓자는 취지다. 교육부 주도 창업펀드는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부, 석·박사 창업 지원 '1000억 펀드' 만든다
창업 지원에 나선 교육부

19일 대학 및 정부 등에 따르면 교육부는 석·박사급 고급 인재를 키우자는 차원에서 대학이 절반을 대면 정부가 나머지 50%를 투자하는 매칭펀드를 이달 말께 내놓을 계획이다. 이번에 조성할 펀드를 밑거름 삼아 대학 내 창업기업이 2014년 247개에서 2020년엔 1800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교육부는 기대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면서 “정부 재원은 최대 500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대학에선 ‘동문펀드’ 등을 활용해 투자금을 조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석·박사가 주요 지원 대상이긴 하지만 교육부는 학부생 창업지원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대학 내 창업교육과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학생들의 종잣돈도 지원해주겠다는 얘기다. 펀드 운용은 중소기업청 산하 모태펀드에 별도 계정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도 투자 대상 결정 등에 참여할 것”이라며 “다만 중소기업청이 벤처투자에 관한 한 경험을 오랫동안 축적해 온 만큼 협업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학협력 인프라도 구축해야

교육부 주도 창업펀드 조성에 대해 대학 현장에선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서울대 공대의 한 교수는 “엔젤투자가 부족한 국내 창업 환경에서 정부가 창업 지원자금을 늘리겠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면서 “다만 한국의 교육 현실상 대학원생이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창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협업을 중시하는 연구소 특성상 대부분의 창업이 교수의 아이디어를 대학원생들이 함께 발전시킨 형태라는 것이다. 최근엔 이 같은 교수 창업마저 시들고 있는 터라 석·박사 창업이 활성화되기엔 현실성이 적다는 게 대학가의 공통된 우려다.

몇몇 대형 대학을 제외하곤 주요 대학의 연구실에선 한두 명만 창업하러 나가도 연구실의 명맥이 끊어져 교수들이 대학원생의 창업을 꺼리는 기류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박노현 서울대 연구처장은 “창업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개선부터 해야 한다”며 “기업 연구소와 학교가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창업도 가능하고, 사업화로도 이어진다”고 말했다.

대학마다 경쟁적으로 마련한 산학협력단의 기능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선진국에선 산학협력단 같은 조직이 연구비 유치에서부터 일반 행정업무까지 전담해 교수나 석·박사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데 비해 국내에선 창업공간을 빌려주는 임대업자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원생 창업에 관한 세부적인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업화에 성공했을 때 투자자에게 어느 정도를 보상할 것인가에 관한 규칙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교육부가 벤처창업과 관련해 정부 내 역할을 늘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기청만 해도 매년 창업교육선도대학을 선정해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작년에만 700억원가량의 예산을 집행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행 시스템에선 대학(원)생들은 창업 경험이 없는 만큼 일반 벤처기업인보다 창업 지원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며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초기 창업은 교육부가 맡고 이후 실제 사업화 단계에선 중기청이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황정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