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지휘, 국악에 접목…풍성한 소리 기대하세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창단 21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에게 지휘봉을 맡긴다. 22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무위자연’ 연주회에서다. 올해 첫 정기공연을 이끌게 된 지휘자 이혜경 씨(55·사진)를 지난 19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국악관현악 분야의 첫 여성 지휘자란 수식어가 한편으로 부담되지만 시작 단계인 만큼 큰 꿈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누군가는 처음이 돼야 하는 자리이니까요.”

국립국악고와 서울대에서 거문고를 전공한 이씨는 대학원 졸업과 함께 1984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 입단했다. 거문고 연주자로 활동하다 2001년 불혹의 나이에 폴란드 유학길에 올랐다. 서양식 오케스트라 지휘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거문고 주자가 왜 서양음악을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어요. 국악과 양악 양쪽을 알고 싶었어요. 다양한 음악을 익히고, 균형 있는 소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는 “학생 시절부터 지휘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식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어 진로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나 교회에서 지휘를 했지만 대학엔 국악관현악 지휘 전공이 없었다.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활동 중에도 오케스트라 공연 리허설을 챙겨보곤 했다.

“유학을 떠나기 전 짐 정리를 하다 대학교 2학년 때 ‘남자로 태어났다면 지휘를 꼭 해봤을 것’이라고 쓴 일기장을 봤어요. 당시엔 여자가 지휘하지 않는 분위기라 무심결에 제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폴란드 크라쿠프 국립음악원 등 유럽 각국에서 10년간 공부했다. 협주곡부터 교향곡, 오페라 아리아까지 다양한 작품을 익히고 지휘 마스터클래스를 수강했다. 그는 “더 풍성한 음악 표현을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제 시작 단계”란 말을 자주 했다. 지휘를 여러 해 공부했지만 서양음악을 기초로 만들어진 지휘법을 국악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어서다.

“서양음악과 국악은 악기 주법과 박자 단위 등이 다릅니다. 서양 오케스트라는 현악기를 활로 연주하지만, 우리 가야금이나 거문고는 현을 손으로 뜯잖아요. 지휘법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해요. 국악의 미묘한 시김새(장식음)를 살릴 때도 마찬가지죠. 지휘봉으로 선을 그리듯 보다 부드럽게 움직여야 합니다.”

이번 공연에서 이씨는 기존 곡과 함께 미국인 작곡가들이 쓴 국악관현악 두 편을 초연한다. 도널드 워맥 하와이대 음악과 교수가 쓴 ‘흩어진 리듬’에는 장단이 없고, 박자 패턴도 자주 바뀐다. 이씨는 “다채로운 국악 표현을 들려주겠다”며 “전통음악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