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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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엔화의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미국의 완화적인 금리인상 기조부터 마이너스 금리 부작용, 엔캐리트레이드 청산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엔화를 초강세로 이끈 원인을 바탕으로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 엔·달러 환율, 심리적 마지노선 110엔 하회…107엔대로 미끌

21일(현지시간) 뉴욕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09.45엔을 기록해 전날보다 0.38엔 하락해 마감했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초 1년 반 만에 107엔대까지 떨어진 후 최근 108~109엔대에서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120엔대에서 거래됐던 올 초 대비 10%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가 상승 탄력을 받게 된 주 원인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 기조 완화를 꼽았다.

김문일 유진투자선물 연구원은 "외환시장은 Fed의 영향력이 가장 큰 곳"이라며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면서 미 달러화는 급격한 약세를 나타냈고 이는 엔화 강세의 트리거(trigger)가 됐다"고 말했다.

Fed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금리인상 횟수를 당초(지난해 12월 전망) 네 차례에서 두 차례로 줄였다.

이달 초 공개된 3월 FOMC의사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위원들은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적인 목소리를 냈다. 경기 부진과 금융불안을 우려하며 조심스러운 금리인상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의사록 공개 직후 달러당 엔화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110엔선이 1년만에 깨지기도 했다. 미국의 장기 금리가 낮은 수준에서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시장 참가자들이 달러화를 팔고(달러 약세) 엔화를 사들인 것(엔화 강세)이다.

일본은행(BOJ)이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엔화 강세라는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분석도 있다. 일반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는 자국통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엔화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과거 일본 당국은 엔화가 강세 흐름을 나타내면 시장개입을 통해 약세로 돌려놨었다"며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이후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그 효과에 대한 의심도 높아지며 엔화 강세는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선 돈 풀기에 여념이 없는 일본은행이 외환시장의 통제력을 잃었다는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하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재 엔·달러 환율은 2014년 10월말 양적완화 확대 이전 수준으로 하락했다"며 "일본 통화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엔캐리트레이드 청산, 엔화 가치 더 끌어올려…시장 개입 어려워진 日 정부

경기부진에 더해 중국 등 금융시장 불확실성, 유가를 둘러싼 우려 등이 상존하고 있는 점은 엔화의 수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이 금융경제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면서 안전자산인 엔화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엔 캐리트레이드의 청산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점도 엔화가치를 밀어 올리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캐리트레이드는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고금리의 자산에 투자하는 기법을 말한다. 특히 엔화는 장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캐리트레이드의 주요 자금조달 통화가 됐다.

그러나 금융불안이 이어지고 신흥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가 부진에서 자유롭지 못하면서 엔캐리트레이드 자금이 급격히 청산되고 있는 조짐이다.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의 중심에는 와타나베 부인들이 있다.

와타나베 부인은 남편의 수입으로 가정 재정을 담당하는 일본 중산층 가정주부를 지칭한다. 일본의 10년 장기불황과 저금리를 배경으로 2000년 무렵부터 등장해 외환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선 일본의 개인 외환투자자를 통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김문일 연구원은 "그간 와타나베 부인들은 싼 엔화를 빌려 신흥국의 자산과 채권 등에 적극 투자했지만 엔화 강세, 신흥국 자산 가격 하락으로 환차손이 발생했다"며 "피해를 막기 위해 손절에 나서면서 엔화가 강세를 띠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미국의 반대로 일본 정부가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나서기 어려운 점도 엔화 강세 기조를 꺾지 못하는 요인이다. 최근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과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는 "필요하면 주저하지 않고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잇따라 내놨다.

이를 두고 미국의 잭 루 재무장관은 "최근 엔화 강세에도 외환시장은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며 "일본은 통화 약세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주요 20개국(G20)과의 약속에 동의하고 있다"고 언급해 시각차를 드러냈다.

그동안 미국 정부가 일본의 양적완화 확대, 마이너스 금리 도입 등 엔화 약세 정책에 기반한 정책을 지지했던 점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발언이다.

김광래 연구원은 "루 장관의 발언으로 일본의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힘들어졌다"며 "미국의 경우 달러화 강세가 부담이 돼 타국의 통화 약세를 경계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무역 적자가 쟁점으로 부상한 가운데, 달러화 강세가 미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트린다는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채선희 / 박상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