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피해자가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의 원인 물질에 대해 환경부가 20년 전 ‘유독물질이 아니다’는 판정을 내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에서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책임이 정부에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1996년 당시 유공이 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에 대해 신청한 유해성 심사에서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린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PHMG는 폐를 손상시키는 물질로 살균제 사망사건의 원인 물질로 지목되고 있다.

환경부가 PHMG 유해성 여부를 심사한 것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은 1994년 자체 개발한 PHMG의 제조를 위해 환경부에 유해성 심사 승인 신고서를 제출했다.

유공은 카펫 등을 항균하기 위한 용도로 심사를 요청했다. 환경부는 두 달 뒤 “PHMG는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정을 내렸다. 환경부 관계자는 “당시 소비자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 과정에서 카펫에 뿌리는 용도로 신청해 흡입 독성 시험은 생략했다”며 “유공이 제출한 자료에 근거해 심사했을 때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옥시는 2001년부터 PHMG를 본래 신고 당시 용도가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했지만 이 과정에서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았다. 용도 변경 때 환경부의 유해성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하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난해에야 용도 변경 때도 유해성 심사를 받도록 규정을 신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산품 안전 기준 심사도 피해갔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에는 가습기 세정제에 관한 기준은 있지만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기준은 없었다.

고윤상/심성미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