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초고가 정책 유효기간 끝나…보급형 전성시대 전망

아이폰도 끝내 못 버텼다.

꽁꽁 얼어붙은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성장 신화는 13년 만에 종식됐다.

그동안 아이폰은, 과장하자면 소위 '스노브(snob) 족'들의 전유물로 불렸다.

같은 성능의 다른 프리미엄 스마트폰보다 훨씬 비싸도 사용자들은 아이폰이 주는 상징성 하나 때문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명품백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심리와 같았다.

애플이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경쟁사 프리미엄 모델보다 최소 100달러 이상의 고가 정책을 유지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 전략은 예상을 깨고 성공을 거뒀다.

지금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이익의 약 90%를 애플은 독식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스마트폰 수요 침체와 더불어 유독 프리미엄폰 시장 규모가 급격히 줄면서 애플은 이제 컴컴한 터널 초입에 섰다.

애플은 올해 회계연도(FY) 제2분기 매출액(2015년 12월 27일∼2016년 3월 26일)이 505억6천만 달러(58조1천100억 원)로 집계됐다고 27일 밝혔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애플의 매출액은 2003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하게 됐다.

문제는 다름 아닌 애플 매출의 65%를 차지하는 아이폰이었다.

이날 발표된 아이폰의 2분기 판매 대수는 5천120만대로 작년보다 990만대(16.2%)나 줄었다.

일각에서는 작년 하반기 출시한 아이폰6s가 혁신을 이뤄내지 못한 점을 꼽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프리미엄 스마트폰 수요 자체가 줄어드는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는 평가다.

이제 스마트폰 시장에서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프리미엄과 보급형 스마트폰의 성능이 평준화되면서다.

중저가폰 열풍이 일고 있는 이유다.

국내만 해도 보급형 모델의 판매 비중은 1~2년 사이 급격히 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 16%에 그쳤던 50만원 미만 중저가 단말기 판매 비중은 지난해 33%까지 뛰었다.

프리미엄 시장이 죽으면서 박리다매 전략을 구사하는 중국과 인도의 현지 제조사들에겐 큰 기회가 찾아오게 됐다.

실제로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선 삼성전자가 현지 제조업체들에 밀려 작년 스마트폰 판매량 5위 밖으로 밀려난 바 있다.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등이 대표적인데 샤오미는 최첨단 성능의 프리미엄 모델을 50만원대에 내놓아 업계 시선을 끌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아예 중국을 타깃으로 한 새로운 중저가 모델 '갤럭시C'도 출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인도에선 그나마 삼성이 타이젠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한 저가폰 Z시리즈와 중저가형 갤럭시J 시리즈 등으로 선방하고 있으나 더 저렴한 제품으로 무장한 마이크로맥스(Micromax) 등 현지 업체들의 추격이 심상치 않다.

애플도 2년 반 만에 보급형 모델 아이폰SE를 들고 나왔지만 이미 중저가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경쟁사들 틈 사이에서 얼마나 좋은 성적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아이폰 시리즈보다 값을 낮추기는 했으나 그리 매력적인 가격대가 아니어서다.

애플은 이날 실적발표를 하면서 앞으로 아이폰에만 목매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소위 '탈 스마트폰' 전략인데, 애플페이, 앱스토어, 애플뮤직 등 애플 생태계를 더 키워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이들 서비스 분야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20% 성장했다.

그러나 애플 생태계의 허브(hub)가 바로 아이폰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생태계 확대 전략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이통통신사의 한 관계자는 "애플로선 쉽지 않겠지만 대표 제품인 아이폰 가격 거품 빼기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goriou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