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사는 김모씨(42)는 ‘과학의 달’인 4월만 되면 바빠진다. 올해는 식용곤충에 관한 학술 논문을 검색하기 위해 강남구청 컴퓨터실을 자주 드나들어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참가한 ‘청소년 과학탐구토론대회’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식용곤충에 대한 보고서를 20장 넘게 써야 하는데 딸에게만 맡겨두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꿈나무들의 탐구력 계발을 위해 도입된 각종 과학경진대회가 취지와는 달리 ‘학부모 경진대회’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회 입상 실적이 영재교육원 입학에 도움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전문학원 등 맞춤형 사교육까지 등장했다.
'학부모 경연장'으로 변질된 초등생 과탐대회
◆‘식용곤충 열풍’ 배경 알고 보니…

한국과학창의재단은 매년 △과학탐구토론 △융합과학 △기계공학 △항공우주 등 4개 영역에서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과학탐구대회를 연다. 이 가운데 초등학교 과학탐구토론대회(과탐토)의 인기가 가장 많다. 직접 제작한 작품을 보여줘야 하는 다른 대회와 달리 토론대회는 학생 3명이 한 조를 이뤄 특정 주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토론만 벌이면 되기 때문이다.

교내 대회를 거쳐 시·도교육청 예선과 본선에서 입상해야 9월께 열리는 전국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지난해 서울 지역에서만 600여개 초등학교의 학생 3만6000여명이 교내 대회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해송초교의 과학담당 교사는 “올해 학생 13개팀(39명)이 토론대회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올해 주제는 ‘식품으로 적합한 곤충을 찾아 활용 방법을 제안하라’였다. 지난 2월 말 창의재단에서 주제를 발표하자 ‘식용곤충’이 네이버 등 주요 포털의 인기 검색어로 떠오르기도 했다. 곤충 사육을 체험하는 경기 김포시의 B생태원에는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예약 문의가 쇄도했다. 서울 신당동의 식용곤충 음식점인 ‘빠삐용의 키친’은 다음달까지 식사 예약이 끝났다. 식당 관계자는 “학부모와 초등학생의 예약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영재교육원 가는 지름길”

과학경진대회는 과탐토만 있는 게 아니다. 과학창의력 대회, 과학탐구 실험대회, 자연관찰 탐구대회 등 비슷한 대회가 수두룩하다. 자녀의 수상을 위해 부모들이 적극 나서는 이유는 시·도 대회에서 입상하면 영재교육원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서울교육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주요 대학과 일선 교육청은 영재교육원을 설립해 수학·과학 분야에 재능이 있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초등학교에서 시험이 없어지다 보니 교육청 등이 영재교육원에서 교육받을 학생들을 선발하기가 쉽지 않다”며 “과학대회 입상 경력이 영재교육원 입학은 물론 과학고 입시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대회 수준이 만만치 않은 것도 학부모들이 나서게 되는 요인 중 하나다. 과탐토는 교내대회에서는 20장, 전국대회에선 30장가량의 보고서를 초등학생에게 요구한다. 서울 강남과 목동 등지에선 전문 학원까지 생기는 등 ‘과열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의 C학원은 지난 2월부터 ‘과탐토 준비반’을 운영 중이다. 이 학원 관계자는 “강사가 전문 연구기관의 논문을 활용해 학생들을 지도한다”며 “수강생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