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 '집권 4년차 징크스' 못깨는 까닭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측근 비리 등 레임덕이 원인
YS정부 이후 여당 선거 모두 져…DJ·노무현 정부도 전철 밟아
새누리 참패는 예고된 참사
당·청 갈등…정권 재창출 실패
1997년 YS·이회창 갈등…신한국당 대선에서 패배
MB정부 말기 '저축은행 비리'…재·보선, 서울시장 선거 '쓴잔'
YS정부 이후 여당 선거 모두 져…DJ·노무현 정부도 전철 밟아
새누리 참패는 예고된 참사
당·청 갈등…정권 재창출 실패
1997년 YS·이회창 갈등…신한국당 대선에서 패배
MB정부 말기 '저축은행 비리'…재·보선, 서울시장 선거 '쓴잔'
박근혜 정부도 역대 정부의 ‘집권 4년차 여당 선거 패배 징크스’를 피해가진 못했다. 김영삼 정부 이후 집권 4년차에 치러진 선거에서 여당은 늘 패했고, 새누리당도 지난 ‘4·13 총선’에서 이 같은 전철을 밟았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역대 정부 선거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고, 제대로 대처했다면 여당이 이렇게까지 참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권 4년차 여당 패배는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과 연관이 있다. 역대 정부 집권 후반기에 측근 비리 등으로 레임덕이 찾아왔고, 이는 선거 패배의 원인이 됐다. 또 선거 패배는 레임덕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른바 ‘집권 4년차 징크스’다.
김영삼 정부 4년차인 1996년 4월11일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299개 의석 가운데 여당인 민자당은 과반에 못 미치는 139석을 얻었다. 새정치국민회의가 79석, 자민련 50석, 통합민주당 15석, 무소속이 16석을 각각 차지해 여소야대가 됐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차남 현철씨가 연루된 한보 게이트로 레임덕을 맞았다.
김대중 정부 4년차(2001년)에 치러진 서울 동대문을과 구로을, 강원 강릉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모두 승리했다. 앞서 그해 4월 시행된 서울 은평구청장 보선에서도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그해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와 김대중 대통령 3남 홍걸씨의 금품수수 의혹이 여당에 결정타였다.
노무현 정부 집권 4년차(2006년) ‘5·31 지방선거’에선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참패했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광역단체장 3명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김완주 전북지사 1명만 당선됐다. 수도권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당선자는 경기 구리시장이 유일했다. 전국 기초단체장 230곳 가운데 열린우리당은 19명만 당선됐다. 같은 해 10월 4곳(서울 송파갑·성북을, 부천 소사, 경남 마산갑)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도 열린우리당 후보는 모두 패했다. 러시아 유전 개발 및 행담도 게이트가 선거 패배의 결정타가 됐다.
이명박 정부 집권 4년차(2011년 4월27일)에 시행된 국회의원 재·보선(경기 성남 분당을, 전남 순천, 경남 김해을)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은 1곳(김해을)만 이겼다. 강원지사도 민주당(최문순 후보)에 내줬다. 같은 해 10월16일 치러진 서울시장 보선에서도 민주당(박원순 후보)에 패했다. 임기 말 저축은행 비리 사태 등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역대 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청와대와 집권당이 충돌할 땐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협력하면 성공했다는 점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비자금 수사유보’ 등에 대해 갈등을 빚었고, 신한국당은 대선에서 졌다.
반대로 2002년 대선 땐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노무현 후보가 협력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이명박 정부 때 이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은 행정부 세종시 이전 문제 등을 놓고 마찰을 겪기도 했지만 2012년 대선을 앞두고선 협력해 승리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김대중 정부 4년차(2001년)에 치러진 서울 동대문을과 구로을, 강원 강릉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모두 승리했다. 앞서 그해 4월 시행된 서울 은평구청장 보선에서도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그해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와 김대중 대통령 3남 홍걸씨의 금품수수 의혹이 여당에 결정타였다.
노무현 정부 집권 4년차(2006년) ‘5·31 지방선거’에선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참패했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광역단체장 3명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김완주 전북지사 1명만 당선됐다. 수도권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당선자는 경기 구리시장이 유일했다. 전국 기초단체장 230곳 가운데 열린우리당은 19명만 당선됐다. 같은 해 10월 4곳(서울 송파갑·성북을, 부천 소사, 경남 마산갑)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도 열린우리당 후보는 모두 패했다. 러시아 유전 개발 및 행담도 게이트가 선거 패배의 결정타가 됐다.
이명박 정부 집권 4년차(2011년 4월27일)에 시행된 국회의원 재·보선(경기 성남 분당을, 전남 순천, 경남 김해을)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은 1곳(김해을)만 이겼다. 강원지사도 민주당(최문순 후보)에 내줬다. 같은 해 10월16일 치러진 서울시장 보선에서도 민주당(박원순 후보)에 패했다. 임기 말 저축은행 비리 사태 등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역대 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청와대와 집권당이 충돌할 땐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협력하면 성공했다는 점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비자금 수사유보’ 등에 대해 갈등을 빚었고, 신한국당은 대선에서 졌다.
반대로 2002년 대선 땐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노무현 후보가 협력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이명박 정부 때 이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은 행정부 세종시 이전 문제 등을 놓고 마찰을 겪기도 했지만 2012년 대선을 앞두고선 협력해 승리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