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진학 매년 증가 추세
서울과학고 5명 중 1명꼴
'추천 불가' 방침에도 학부모 고집에 속수무책
빛바랜 이공계 육성책
정부, 연간 8억~30억원 지원
"대학, 특별전형 축소도 과학영재 의대진학 부추겨"
○갈수록 심해지는 의대 쏠림 현상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9일 교육부에서 받은 ‘최근 3년간 과학고·영재고 진학현황’에 따르면 영재고 졸업생 1500명 중 의학계열에 진학한 학생이 130명(8.7%)에 달했다. 본래 취지에 맞는 이공계 진학률은 86.1%이고 나머지 3.6%는 인문·사회계열 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과학고는 지난해 졸업생 중 5분의 1(19.4%)이 치·의대에 진학했다. 또 다른 영재학교인 경기과학고의 의학계열 진학 비율은 2014학년도 8.4%에서 2016학년도엔 12.6%로 높아졌다. 영재고와 과학고를 합친 의학계열 진학 비율도 매년 상승세다. 2014학년도 3.5%에서 2015, 2016학년도엔 각각 3.6%, 5.5%로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자 각 학교에서는 의대 진학을 막기 위해 ‘극약 처방’까지 내놨다. 서울과학고는 올해 중3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서 ‘의대 진학 시 추천서 불가’ 방침을 밝혔다. 임규형 서울과학고 교장은 “영재고, 과학고 교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며 “대부분 학생이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의대를 선택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설립 취지 못 살리는 영재고
영재고와 과학고는 이공계 우수 인재를 양성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혈세(세금)’도 들어간다. 과학고는 학교당 연간 8억~15억원, 영재고는 20억~30억원을 지원받는다. 영재고 학생들은 입학금과 수업료를 면제받아 각종 장학금까지 포함하면 금전적으로 일반고 대비 다섯 배가량의 혜택을 받는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교육당국도 딱히 손을 쓸 방법이 없어 난감해하고 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일부 의학계열 진학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학교에 대해선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의대들이 영재고, 과학고 졸업생을 경쟁적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A영재고 교장은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의대는 학교장 추천서를 요구하지만 다른 의대는 추천서가 없어도 받아준다”며 “의대에 진학하면 추천서를 안 써주겠다고 으름장을 놔봤자 허사”라고 털어놨다.
이공계를 전공한 수재들이 들어갈 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점 역시 의학계열 진학률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대학들이 과학영재를 위한 특별전형을 축소하거나 없애 영재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