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파괴적 혁신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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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경영이론들은 대부분 성공한 기업 사례를 분석하고 그 공통점을 조합해 만든 것이다.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될 리 없다. 많은 기업들이 혁신에 실패하고 결국 경영이론을 무시하게 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그러나 경영이론들이 공통적으로 주는 메시지는 분명히 있다. ‘포화된 시장이란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항상 꽉 차 있는 듯하다.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더 내놓을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세상을 뒤바꾼 혁신 기업들은 소비자들도 잘 모르던 제품과 서비스로 기존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마침내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고 정의했다.
'시장 포화'라는 건 핑계일 뿐
나라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잘나가던 업종들도 구조조정의 칼날 아래 놓이고, 최고의 대기업들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원가 절감에 나설 때 누가 새로운 투자를 하고, 기존에 없던 서비스를 하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파괴적 혁신은 이런 성숙기·정체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조립식 컴퓨터를 생산한 델컴퓨터, 원목가구 같은 컬러와 실용 디자인으로 승부한 이케아, 저가 마트를 개척한 월마트와 알디, 화장품 가격 거품을 뺀 미샤와 페이스샵, 저가 휴대폰업체인 중국의 샤오미, 제조직매형의류(SPA)라는 카테고리를 만든 일본의 유니클로 등이 그런 파괴자들이다.
파괴적 혁신이 통하는 논리는 이렇다. 대개의 기업들은 기존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개선에 몰두한다. 부가 기능과 서비스를 계속 늘리고 가격은 자꾸 올라간다. 소비자들은 불만이 있어도 할 수 없이 추가 가격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 이때 파괴적 혁신 기업이 나타나 기존 제품과 품질이 비슷한데도 엄청나게 싼 가격을 제시한다. 불만 많던 소비자들이 일시에 몰려든다. 기존 시장은 파괴된다.
파괴자들이 계속 잘나가느냐는 별개 문제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파괴적 혁신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적을 때 주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인도에서 파괴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건 자원과 기술이 부족해서다. 자본이 적은 벤처기업들이 파괴적인 모델을 자주 내놓는 것도 같은 논리다. 반면 기존 대기업들은 이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파괴당할 가능성이 높다.
저성장과 결핍이 혁신의 기회
파괴적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시장 조사를 피하는 게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이 혁신적인 경영자의 통찰이지만, 소비자들의 활동이나 경험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고객만족이라는 평범한 목표는 버리고, 고객 스스로도 모르는, ‘인지되지 않은 니즈(unrecognized needs)’를 찾아내야 한다. 스티브 잡스 말대로 “만족시키려 하지 말고, 놀라게 해야 한다.” 유니클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싼 데도, 내게 꼭 맞는 옷이 있다니!”
한국은 파괴적 혁신의 나라였다. 적당한 품질에 싼 한국산 의류가 세계를 누볐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척박한 현실이 무조건 싸게 생산하고, 헐값 수주도 불사하는 용기를 내게 했다. 그때에 비하면 모두가 ‘시장이 꽉 차 있다’거나 ‘바늘 하나 꼽을 게 없다’는 노래만 부른다. 이때야말로 경영자의 ‘전략적 방향 선회(strategic move)’가 필요하다. 기존 시장에 안주할 것인가, 잃을 것 없는 파괴자가 될 것인가.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시장은 항상 꽉 차 있는 듯하다.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더 내놓을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세상을 뒤바꾼 혁신 기업들은 소비자들도 잘 모르던 제품과 서비스로 기존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마침내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고 정의했다.
'시장 포화'라는 건 핑계일 뿐
나라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잘나가던 업종들도 구조조정의 칼날 아래 놓이고, 최고의 대기업들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원가 절감에 나설 때 누가 새로운 투자를 하고, 기존에 없던 서비스를 하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파괴적 혁신은 이런 성숙기·정체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조립식 컴퓨터를 생산한 델컴퓨터, 원목가구 같은 컬러와 실용 디자인으로 승부한 이케아, 저가 마트를 개척한 월마트와 알디, 화장품 가격 거품을 뺀 미샤와 페이스샵, 저가 휴대폰업체인 중국의 샤오미, 제조직매형의류(SPA)라는 카테고리를 만든 일본의 유니클로 등이 그런 파괴자들이다.
파괴적 혁신이 통하는 논리는 이렇다. 대개의 기업들은 기존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개선에 몰두한다. 부가 기능과 서비스를 계속 늘리고 가격은 자꾸 올라간다. 소비자들은 불만이 있어도 할 수 없이 추가 가격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 이때 파괴적 혁신 기업이 나타나 기존 제품과 품질이 비슷한데도 엄청나게 싼 가격을 제시한다. 불만 많던 소비자들이 일시에 몰려든다. 기존 시장은 파괴된다.
파괴자들이 계속 잘나가느냐는 별개 문제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파괴적 혁신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적을 때 주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인도에서 파괴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건 자원과 기술이 부족해서다. 자본이 적은 벤처기업들이 파괴적인 모델을 자주 내놓는 것도 같은 논리다. 반면 기존 대기업들은 이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파괴당할 가능성이 높다.
저성장과 결핍이 혁신의 기회
파괴적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시장 조사를 피하는 게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이 혁신적인 경영자의 통찰이지만, 소비자들의 활동이나 경험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고객만족이라는 평범한 목표는 버리고, 고객 스스로도 모르는, ‘인지되지 않은 니즈(unrecognized needs)’를 찾아내야 한다. 스티브 잡스 말대로 “만족시키려 하지 말고, 놀라게 해야 한다.” 유니클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싼 데도, 내게 꼭 맞는 옷이 있다니!”
한국은 파괴적 혁신의 나라였다. 적당한 품질에 싼 한국산 의류가 세계를 누볐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척박한 현실이 무조건 싸게 생산하고, 헐값 수주도 불사하는 용기를 내게 했다. 그때에 비하면 모두가 ‘시장이 꽉 차 있다’거나 ‘바늘 하나 꼽을 게 없다’는 노래만 부른다. 이때야말로 경영자의 ‘전략적 방향 선회(strategic move)’가 필요하다. 기존 시장에 안주할 것인가, 잃을 것 없는 파괴자가 될 것인가.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