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빗] 예술계 관행?…내 일이라 내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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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대작' 속 '예술계 관행' 논란
예술의 문제 아닌 직업의식의 문제
"겉은 화려해보여도 장인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예술의 문제 아닌 직업의식의 문제
"겉은 화려해보여도 장인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예술계는 '대작'으로 시끄럽습니다. 대작(大作)이 아닌 대작(代作·타인의 작품)이라 씁쓸합니다. 지난 7년 간 수백만~수천만원에 팔려나간 가수 겸 화가 조영남 씨(71)의 화투 그림 200여점이 사실 자신의 그림이라고 한 무명화가가 폭로했습니다. 조씨는 사기 혐의로 고소됐습니다. "논란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예술계의 관행"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되려 불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분노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예술이라는 특정 분야만의 문제라서가 아니었습니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고 어릴 적부터 수없이 배워온 정직함, 그리고 평등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에 대한 실망이었습니다.
예술품은 공산품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조영남 공장'에서 하청업체 직원이 찍어낸 상품 그림에 대중은 열광했습니다. '유명 연예인' 프리미엄으로 가격은 더 뛰었고, 조씨는 수백장을 팔아 수억원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무명화가가 받은 돈은 편당 10만원 남짓. 조영남 사장은 큰 돈을 벌었지만, 하청 직원의 쥐꼬리 월급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악덕 업주, 가난한 직원의 슬픈 이야기 같습니다. 조영남을 통해 우린 그런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관행'이 때론 폭력이고, 권력인 이유입니다.
조영남이 말한 '예술계의 관행'이 통하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모든 예술계가 관행을 누릴만큼 여유롭지도 않습니다. 지난 10일 '장인'을 주제로 박술녀 한복연구소 원장을 찾았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 부는 최근의 한복 대중화에 대한 인터뷰가 목적이었습니다. 조영남 대작 사건이 터지기 일주일 전이었죠. 기자가 본 박 원장의 모습은 그닥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박 원장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사옥에 만났을 때 쉴새없이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매장으로,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전화를 직접 받았습니다. 매장을 찾는 손님마다 꼼꼼히 응대했습니다. 고객을 맞이하고 한복 색감을 맞추는 일부터 패션쇼 기획 및 섭외까지 본인이 챙겼습니다.
박 원장에게 직원 대신 왜 직접 전화를 받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매장으로 전화를 하시는 분들은 모두 저를 찾으시는 거잖아요. 그러니 전화는 물론 항상 이 곳에서 손님을 맞이하죠. 제 이름으로 만든 한복을 찾아주시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입니다." 박 원장은 26살부터 한복 디자이너 1세대인 이리자 선생의 문하생으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제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곱디고운 옷감을 다루니 우아한 직업이라 여기기 십상이지만, 수면 아래에는 백조의 부단한 발짓이 있습니다.
치열한 노력은 필수입니다. 운전기사나 비서 한 명 없이 모든 스케줄을 스스로 감당해내며 힘들기도 했지만 그러한 시간들이 지금의 박술녀를 '한복 대통령'으로 만든 원천인 셈입니다. 한복을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입는 이가 더 돋보일 수 있을지, 또 한복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옷이 될 수 있을지 늘 연구합니다.
"세상에는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겉은 화려해보이지만 (장인의) 현실을 녹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습니다. 땀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거든요. 누군가에게 맡기기 보다 내 일이니깐, 내가 하는 거예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영향으로 바느질과 다림질 등 옷감 손질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행상에서 생선 장사를 할 땐 편한 복장으로 계시다가도 격식을 차려야 할 상황에는 집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나가셨어요. 어머니의 그런 반듯한 모습에 한복이 더 아름답게 보였던 것 같아요. 그 한복이 이제는 제 인생 전부가 되었고요."
한복을 만들 때 가장 중심에 두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한복은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옷이 아닙니다. 입는 이를 생각하며 정성스레 짓고, 또 정성스레 입어야 하는 옷이죠. 그리기위해서 박음선이 울지 않도록 촘촘하게 바느질하고, 다림질도 아주 많이 합니다. 입은 사람이 돋보여야 해요."
지난 17일 박술녀 원장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조영남 사건을 본 뒤 다시 묻고 싶었습니다. 조수에게 왜 작업을 맡기지 않는지, 다들 '예술계의 관행'이라 말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분업도 좋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요. 여가시간,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직접 해야 마음 편해요. 오히려 소탈한 추진이 완벽한 결과를 만드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예술계의 관행' 위에서 편하고, 누군가는 본인이 해야 편합니다. 어떤 화가는 조수가 그림을 그리는게 당연하고, 어떤 한복쟁이는 내 일은 내가 하는게 당연합니다.
박 원장의 말처럼 장인의 겉모습과 작품은 화려해보일지 몰라도, 장인의 일상은 매순간 정직과 노력으로 고단합니다. 장인에게 사사한다 한들 짧은 시간에 저절로 그 정신을 터특할 도리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 힘든 길을 묵묵히 걷는 이들이 있습니다. 스승에게 배운 기술과 정신을 자신의 몸으로 터득해 명맥을 이어가는 많은 예술가도 이 땅에 많음을 기억해주세요!.!
# 박술녀? 1956년 생, 이리자 이영희 등 1세대 한복연구가를 잇는 한복 제작인. △2010년 6월 한국 해비타트 사랑의집짓기 건축기금마련 패션쇼 △2014년 3월 하바드대학생 Korea trek 한국방문 한복체험행사 △2014년 3월~10월 MBC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 한복, 침구, 소품 협찬 △2015년 2월~5월 강남관광정보센타 한류전시관 한복전시 △2015년 12월 대한민국 문화경영 대상 한복브랜드부분 수상 △2015년 12월 대한민국 창조경영대상 한복명인부문 수상 등
# RE빗? RE(Replay)와 래빗(Lab-it)의 합성어. 뉴스래빗이 현장 취재와 다양한 기사 실험를 통해 느낀 점을 공유하는 칼럼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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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김민성 기자 / 연구= 장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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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품은 공산품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조영남 공장'에서 하청업체 직원이 찍어낸 상품 그림에 대중은 열광했습니다. '유명 연예인' 프리미엄으로 가격은 더 뛰었고, 조씨는 수백장을 팔아 수억원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무명화가가 받은 돈은 편당 10만원 남짓. 조영남 사장은 큰 돈을 벌었지만, 하청 직원의 쥐꼬리 월급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악덕 업주, 가난한 직원의 슬픈 이야기 같습니다. 조영남을 통해 우린 그런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관행'이 때론 폭력이고, 권력인 이유입니다.
조영남이 말한 '예술계의 관행'이 통하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모든 예술계가 관행을 누릴만큼 여유롭지도 않습니다. 지난 10일 '장인'을 주제로 박술녀 한복연구소 원장을 찾았습니다. 젊은이들 사이에 부는 최근의 한복 대중화에 대한 인터뷰가 목적이었습니다. 조영남 대작 사건이 터지기 일주일 전이었죠. 기자가 본 박 원장의 모습은 그닥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박 원장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사옥에 만났을 때 쉴새없이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매장으로,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전화를 직접 받았습니다. 매장을 찾는 손님마다 꼼꼼히 응대했습니다. 고객을 맞이하고 한복 색감을 맞추는 일부터 패션쇼 기획 및 섭외까지 본인이 챙겼습니다.
박 원장에게 직원 대신 왜 직접 전화를 받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매장으로 전화를 하시는 분들은 모두 저를 찾으시는 거잖아요. 그러니 전화는 물론 항상 이 곳에서 손님을 맞이하죠. 제 이름으로 만든 한복을 찾아주시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입니다." 박 원장은 26살부터 한복 디자이너 1세대인 이리자 선생의 문하생으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제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곱디고운 옷감을 다루니 우아한 직업이라 여기기 십상이지만, 수면 아래에는 백조의 부단한 발짓이 있습니다.
치열한 노력은 필수입니다. 운전기사나 비서 한 명 없이 모든 스케줄을 스스로 감당해내며 힘들기도 했지만 그러한 시간들이 지금의 박술녀를 '한복 대통령'으로 만든 원천인 셈입니다. 한복을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입는 이가 더 돋보일 수 있을지, 또 한복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옷이 될 수 있을지 늘 연구합니다.
"세상에는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겉은 화려해보이지만 (장인의) 현실을 녹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습니다. 땀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거든요. 누군가에게 맡기기 보다 내 일이니깐, 내가 하는 거예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영향으로 바느질과 다림질 등 옷감 손질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행상에서 생선 장사를 할 땐 편한 복장으로 계시다가도 격식을 차려야 할 상황에는 집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나가셨어요. 어머니의 그런 반듯한 모습에 한복이 더 아름답게 보였던 것 같아요. 그 한복이 이제는 제 인생 전부가 되었고요."
한복을 만들 때 가장 중심에 두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한복은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옷이 아닙니다. 입는 이를 생각하며 정성스레 짓고, 또 정성스레 입어야 하는 옷이죠. 그리기위해서 박음선이 울지 않도록 촘촘하게 바느질하고, 다림질도 아주 많이 합니다. 입은 사람이 돋보여야 해요."
지난 17일 박술녀 원장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조영남 사건을 본 뒤 다시 묻고 싶었습니다. 조수에게 왜 작업을 맡기지 않는지, 다들 '예술계의 관행'이라 말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분업도 좋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요. 여가시간,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직접 해야 마음 편해요. 오히려 소탈한 추진이 완벽한 결과를 만드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예술계의 관행' 위에서 편하고, 누군가는 본인이 해야 편합니다. 어떤 화가는 조수가 그림을 그리는게 당연하고, 어떤 한복쟁이는 내 일은 내가 하는게 당연합니다.
박 원장의 말처럼 장인의 겉모습과 작품은 화려해보일지 몰라도, 장인의 일상은 매순간 정직과 노력으로 고단합니다. 장인에게 사사한다 한들 짧은 시간에 저절로 그 정신을 터특할 도리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 힘든 길을 묵묵히 걷는 이들이 있습니다. 스승에게 배운 기술과 정신을 자신의 몸으로 터득해 명맥을 이어가는 많은 예술가도 이 땅에 많음을 기억해주세요!.!
# 박술녀? 1956년 생, 이리자 이영희 등 1세대 한복연구가를 잇는 한복 제작인. △2010년 6월 한국 해비타트 사랑의집짓기 건축기금마련 패션쇼 △2014년 3월 하바드대학생 Korea trek 한국방문 한복체험행사 △2014년 3월~10월 MBC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 한복, 침구, 소품 협찬 △2015년 2월~5월 강남관광정보센타 한류전시관 한복전시 △2015년 12월 대한민국 문화경영 대상 한복브랜드부분 수상 △2015년 12월 대한민국 창조경영대상 한복명인부문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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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김민성 기자 / 연구= 장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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