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한국에서 잇달아 리사이틀(독주회)을 연다. ‘살아있는 전설’ 기돈 크레머(69)와 ‘돌아온 천재’ 막심 벤게로프(42)다. 한국을 자주 찾는 ‘친한파’에 속하는 두 사람이 협연이나 지휘가 아니라 연주자의 기량과 음악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리사이틀로 국내 관객과 만나는 것은 각각 22년(크레머)과 4년(벤게로프) 만이다. 이들은 특정 레퍼토리에 치중하지 않고, 새롭고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랜 시간 바이올린을 연주했지만, ‘거장’이란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국내 관객이 쉽게 접하지 못한 다채로운 곡들로 레퍼토리(연주곡목)를 짰다. 이들을 각각 이메일 인터뷰로 만났다.

◆크레머,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계

기돈 크레머
기돈 크레머
크레머는 피아니스트 뤼카 드바르그와 함께 다음달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라트비아 출신 유대인인 그는 매년 100회가 넘는 연주회를 열며 세계 각국을 누비고 있다. 50여년간 연주를 해왔지만 매번 색다른 공연을 선보인다. 곡을 살짝 비틀어 재해석하기도 하고, 숨겨진 곡을 발굴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바이올린계의 혁명가’로 불린다. 크레머는 “나의 목표는 모두가 알고 경험하는 것들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며 “잊혀졌거나 과소평가받는 작곡가들을 돕는 ‘도구’이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번 무대에서는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폴란드 현대음악가 미치슬라프 바인베르그부터 베토벤, 쇼스타코비치 등의 곡으로 다양하게 구성했다. 크레머가 바인베르그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소나타 3번’으로 포문을 연 뒤 드바르그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7번 D장조’를 들려준다. 이어 두 사람이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장조’, 라벨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장조’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크레머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항상 고전음악과 현대음악 사이에서 바람직한 균형을 찾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크레머는 바인베르그의 음악이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바인베르그는 동시대를 살았던 쇼스타코비치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크레머는 자신처럼 폴란드 출신 유대인인 그의 음악에 주목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슬픈 감성의 선율로 전쟁의 그림자를 표현하겠다”고 강조했다. 4만~15만원.

◆벤게로프, 다양한 음악으로 교감

막심 벤게로프
막심 벤게로프
벤게로프는 고전적 주법이 아닌 개성 넘치는 표현력으로 클래식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름 앞에 ‘막시무스(라틴어로 최상급을 의미)’란 호칭까지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리사이틀은 오는 3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벤게로프는 “짙은 음색이 돋보이는 바흐의 ‘샤콘’으로 시작해 다양한 음악으로 교감하겠다”며 “이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듣는 여행’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바흐의 샤콘을 첫 곡으로 선택한 것은 크레머와 비슷한 이유다. 벤게로프도 러시아 출신 유대인이다. 그는 2005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그는 “강렬한 표현으로 슬픈 운명과 역사적 고통을 담겠다”며 “한국 관객들도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샤콘 이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7번 c단조 ’, 이자이의 ‘바이올린 소나타 6번 E장조’로 분위기를 서서히 끌어올리고 파가니니의 ‘가슴 설렘’으로 현란한 기교의 향연을 펼칠 예정이다. 벤게로프는 “여러 소리의 혼합이 펼쳐지기 때문에 음악의 진정한 다양성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벤게로프는 큰 위기를 겪은 뒤 더 성장한 음악가다. 그는 2007년 갑작스런 어깨 부상을 당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2011년 복귀 이전까지 지휘봉을 잡고 지휘를 배웠다. 그는 “3년의 휴식 기간에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수 있었고, 다른 연주자들과도 깊이 교류할 수 있었다”며 “이후 완전히 새로운 뮤지션으로 태어났으며 한국 무대에서도 그 진가를 마음껏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4만~15만원.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