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허브' 싱가포르 VS 다국적기업 떠나는 한국
지난 13일 싱가포르 투아스 바이오메디컬 파크. 창이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50분(약 50㎞) 거리인 투아스 지역에 들어서자 기중기와 포클레인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머크샤프앤드돔(MSD) 알콘 등 다국적 제약사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소독제 ‘베타딘’을 개발한 글로벌 제약사 먼디파마는 이날 생산시설 및 연구개발(R&D)센터 기공식을 열고 연말까지 1억싱가포르달러(약 860억원)를 투자해 7300㎡ 규모 설비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아시아 첫 생산 거점으로 싱가포르를 택한 것이다. 라만 싱 먼디파마 신흥국시장 사장은 “연구인프라 인력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했다”며 “아시아에 생산시설을 짓는 것은 싱가포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 먼디파마는 지난 13일 투아스 바이오메디컬 파크에서 생산시설 공사에 들어갔다. 조미현 기자
글로벌 제약사 먼디파마는 지난 13일 투아스 바이오메디컬 파크에서 생산시설 공사에 들어갔다. 조미현 기자
◆제약·바이오 허브 된 싱가포르

세계 제약·바이오 회사들이 앞다퉈 싱가포르에 공장과 R&D센터를 짓고 있다. 싱가포르에 거점을 둔 관련 회사만 100여개에 달한다. 아시아 금융 중심지 싱가포르가 글로벌 바이오 허브라는 새 엔진을 장착한 것이다.

'바이오 허브' 싱가포르 VS 다국적기업 떠나는 한국
싱가포르는 2000년부터 정부가 앞장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을 유치했다. 법인세 최고 세율을 17%까지 낮추고 첨단 기술 선도 기업으로 선정되면 15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주는 당근책을 내놨다.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투아스 지역에서 25㎞ 떨어진 바이오폴리스에 R&D센터 클러스터(집적단지)를 조성했다. 이곳에는 바이오 R&D를 전담하는 에이스타 연구소가 있다. 싱가포르대는 듀크대, 옥스퍼드대 등 해외 유수 대학과 함께 의대를 설립해 생명공학 교육을 강화했다.

2001년 50억달러이던 싱가포르의 바이오 생산액은 지난해 300억달러 규모로 급증했다. 바이오산업 종사자도 2만여명으로 같은 기간 세 배 늘었다. 먼디파마 기공식에 참석한 코포쿤 싱가포르 통상산업부 장관은 “싱가포르 정부는 매년 40억싱가포르달러(약 3조4000억원)를 바이오산업에 투입하고 있다”며 “연구 인프라부터 인력까지 안정적인 지원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바이오기업 유치 전략 없는 한국

한국 정부도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한 방안은 빠져 있다. 국내에 생산시설과 R&D 조직이 있는 글로벌 제약사는 단 세 곳에 불과하다. 생산시설은 타이레놀 등을 생산하는 얀센(경기 화성)과 조영제를 제조하는 바이엘(경기 안성)뿐이다. 사노피아벤티스는 대전에 연구원 8명을 둔 R&D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바이오 클러스터로 꼽히는 인천 송도에는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이 전무하다. 업계 고위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에 생산설비를 둔 다국적 제약사들이 높은 법인세, 불확실한 정책, 연구 인프라 부족 등을 이유로 철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역량 있는 글로벌 기업의 생산시설과 R&D센터를 유치하는 것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이동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싱가포르 지사장은 “글로벌 기업의 생산·R&D시설이 들어서면 관련 기술과 인력이 국내로 유입되는 등 순기능이 크다”며 “싱가포르의 성공 사례를 참고해 글로벌 제약사를 적극 유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