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쓰비시자동차와 닛산자동차의 연비·배출가스 조작 의혹에 이어 스즈키자동차까지 연비 조작에 휩쓸리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최고 품질을 표방해온 일본 자동차업체의 ‘모노즈쿠리(장인정신)’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닛산이 최근 경영난을 겪고 있는 미쓰비시 인수에 나선 것처럼 배출가스·연비 조작 ‘스캔들’ 확산을 계기로 일본 자동차업계 재편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쓰비시·닛산 이어 스즈키 '조작 스캔들'…일본차 신화 급브레이크
◆日 업계 4위 스즈키도 연비 조작

미쓰비시의 연비 조작 파문에 이어 일본 자동차업계 4위인 스즈키도 연비 테스트 과정에서 부적절한 수단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즈키 오사무 스즈키 회장은 18일 일본 국토교통성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매 중인 차종 연비를 측정할 때 기본데이터를 법에서 정한 것과 다른 방법으로 산출했다”며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미쓰비시의 연비조작 사태를 계기로 국토교통성이 일본 전체 자동차업계에 이날까지 비슷한 부정이 없었는지 자체 조사해 보고할 것을 요구한 데 따른 답이다. 스즈키는 자사가 판매 중인 알토 왜건R 등 16개 전 차종, 210만대에 걸쳐 연비 부정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스즈키는 지난해 일본을 포함해 글로벌 시장에서 304만대(오토바이 제외)를 생산, 판매했다.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6% 증가한 3조1806억엔(약 34조3820억원), 순이익은 1166억엔(약 1조2600억원)으로 2년 만에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스즈키 주가는 이날 장중 한때 15% 급락했다.

◆흔들리는 日 자동차업계

파문에 휩싸인 일본 자동차 회사는 스즈키뿐만 아니다. 지난달 미쓰비시는 4개 차종, 62만대에 대한 연비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최근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미국에서 팔린 미쓰비시 차량이 연비 규정을 충족하는지 조사에 나서면서 파장은 더 커지고 있다.

경영난에 연비 조작 파문까지 겹치면서 미쓰비시는 결국 무너졌다. 닛산은 지난 12일 경영위기에 처한 미쓰비시에 2373억엔(약 2조5400억원)을 투입해 지분 34%를 확보했다. 아이카와 데쓰로 미쓰비시 사장은 이날 자진 사퇴했다.

미쓰비시를 인수한 닛산 역시 한국에서 배출가스 조작 판정을 받아 궁지에 몰려 있다. 환경부는 작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국내에서 팔린 디젤(경유)차 20개 차종을 조사한 결과 닛산이 캐시카이에 배출가스인 질소산화물(NOX) 저감장치 작동을 중단시키는 임의 설정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닛산 측은 “어떤 조작도 없었다”며 맞서고 있다.

배출가스·연비 조작 스캔들이 확산되면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브랜드 이미지 추락으로 판매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자동차산업 전문가인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배출가스량을 줄이고 연비를 높이는 노력을 해왔지만 정부 규제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편법이 나온 것 같다”며 “일본 자동차업계 전체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자동차업계의 산업 재편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닛산이 어려워진 미쓰비시를 인수한 것처럼 추가 인수합병(M&A)이 일어날 수 있다”며 “경영난을 겪는 업체가 더 나타나면 현재 8개인 일본 자동차 회사가 앞으로 4~5개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도쿄=서정환 특파원/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